‘벨벳 언더그라운드’ 1집 [ 바나나 앨범 ] – 02. 저평가 & 재평가

🎨  명화가 된 앨범아트 3 . 벨벳 언더그라운드 [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1967 ]

  1. 팝 아트 + 록 음악의 만남 : 앤디 워홀이 디자인한 앨범아트
  2. 저평가 & 재평가 : 시대를 앞서간 ‘노란 바나나’

 

‘앤디 워홀’과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만남

앤디 워홀 - 벨벳 언더그라운드 - 니코

영국의 밴드 비틀즈가 미국의 대도시를 순회하며 음악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으 무렵, 뉴욕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에서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이며 주목받기 시작한 ‘벨벳 언더그라운드’라는 밴드가 있었습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반항기 가득한 가사와 독특한 사운드를 눈여겨보던 앤디 워홀이 밴드의 후원자를 자처합니다. 미술가로는 드물게 헐리웃 스타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던 앤디 워홀은 단순한 후원자를 넘어 밴드의 멘토이자 조력자였습니다.
앤디 워홀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데뷔 앨범 프로듀서로 공식 기록되어 있지만, 일반적인 음악 프로듀서보다는 아트 디렉터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했다고 전해집니다. 자신의 독특한 예술 감각을 기반으로 벨벳 언더그라운가 실험성 짙은 음악을 추구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록 음악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앨범 중 하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데뷔 앨범인 ‘The Velvet Underground & Nico’는 커버에 그려진 커다란 ‘노란색 바나나’ 이미지 때문에 [ 바나나 앨범 ]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합니다. 이 강렬한 바나나를 디자인한 사람은 앤디 워홀입니다. 그의 감각적인 팝 아트 스타일이 [ 바나나 앨범 ]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앤디 워홀 - 벨벳 언더그라운드 - 바나나 앨범 - 스티커
바나나 스티커를 벗기면 그 아래 ‘핑크색’으로 칠해진 바나나의 속살이 드러나는 디자인입니다.

이 앨범아트는 단순한 그래픽 디자인을 넘어, 당시 엄격하게 구분되던 상업미술순수예술의 교차를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감상하던 작가의 작품이 음반 가게 선반에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앨범아트가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음반의 주인공은 역시 그 안에 담긴 음악입니다. 대중음악 전문지 「롤링 스톤, Rolling Stone」이 “록의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앨범 중 하나”라고 극찬했듯이 [ 바나나 앨범 ]은 여전히 많은 뮤지션들에게 감동과 창작의 영감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참혹한 실패 :
대중과 평단의 저평가

오늘날 ‘고전’으로 불리는 작품 중 다수가 처음에는 대중과 평단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최고의 찬사를 받는 [ 바나나 앨범 ]도 인정받기까지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일부 팬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그 수는 매우 적었습니다. 음악계는 [ 바나나 앨범 ]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만큼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을 접하는 대중도 적었습니다.
앨범은 5년 동안 3만 장이라는 초라한 판매량을 기록하며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노란 바나나’ 속 음악들

경계를 허무는 실험 정신

아방가르드 avant-garde

  • 프랑스 단어, 본래 군사 용어로, 전투에서 가장 앞에 서서 적진을 향해 나아가는 ‘전위대‘를 의미합니다.
  • 전위 예술 前衛藝術 : 예술 분야에서는 기존의 관습과 전통에 도전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실험적이고 급진적인 예술 운동이나 작품을 지칭합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아방가르드 정신을 음악에 담아낸 밴드였습니다. 기존 음악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당시 주류 음악계가 시도하지 못했던 실험을 감행했습니다.

1960년대 히피 문화가 절정에 달했을 때, 음악계에서도 이를 반영한 사이키델릭 록 psychedelic rock이 유행했습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 역시 사이키델릭 록 밴드로 분류되지만, 그들의 음악은 여느 밴드들과는 분명히 다른 사운드를 추구했습니다.

플라워 파워 - 페퍼상사 - 히피 문화
1967년 발표된 ‘비틀즈’의 [ 페퍼 상사 ]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미국의 서부동부 청년 문화의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서부의 히피들이 주로 자연으로의 회귀, 공동체 생활, 평화주의를 강조했다면, 뉴욕을 중심으로 한 동부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는 도시 감성과 예술 실험에 더 초점을 맞췄습니다. 서부의 예술가들이 ‘사랑과 평화’를 외치며 몽환적이고 낙관적인 세계관을 표현했다면, 동부의 예술가들은 보다 냉소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바로 이러한 동부 뉴욕의 어둡고 복잡한 정서를 대변하는 밴드였습니다.

일부 평론가들은 [ 바나나 앨범 ]을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던 히피 문화에 대한 냉소였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1968년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
1968년 5월 11일, 베트남의 평화를 요구하는 학생 시위 ( 아이오와 주(州) 의사당 – 미국 중서부)

하지만 ‘서부의 히피즘’과 ‘동부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완벽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1960 · 70년대 청년 문화에는 기성세대의 권위에 도전하는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나타났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날까지 강하게 남아 있는 이미지가 ‘군인에게 꽃을 건네는 17세 고등학생’의 사진으로 유명한 ‘플라워 파워 flower power 운동’입니다.

1967.10.21 - 플라워 파워 - flower power
1967년 10월 21일, 워싱턴의 팬타곤 (미 국방부)앞 반전 시위 중, 군인에게 꽃을 건네는 ‘잔 로즈 카스미르’ [ 마크 리부 Marc Riboud 촬영 ]

플라워 파워 flower power

  • 1960년대 후반 ~ 1970년대 초반, 미국 청년층이 주도한 비폭력 저항 운동
  • 폭력 대신 꽃을 들고 평화를 외친 시위 문화가 특징
  • 화려한 색상의 의상, 꽃 장식,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예술과 음악으로 확장
브로드웨이 뮤지컬 - Hair - 1960년대 히피
브로드웨이 뮤지컬 [ Hair, 1968년 초연 ] : 1960년대 히피 운동, 베트남 전쟁을 반대, 평화 시위가 주제

‘히피 문화’는 다양한 저항 운동 속에 녹아들어 당시 젊은 세대의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동부 뉴욕에서도 ‘히피 문화’는 젊음의 상징이었고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 또한 그 문화권 안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히피 문화’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사와 사운드에 담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실험적인 음악들

벨벳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특징은 ‘미니멀한 코드 진행 + 반복 리듬’속에서 냉소와 공허가 뒤섞인 감정을 표현한 데 있습니다. 특히[ 바나나 앨범 ]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녹아 있습니다:

루 리드 Lou Reed (보컬, 기타)가 중심이 된 로큰롤, R&B, 포크 요소가 기반을 이룹니다.
당시 대중음악의 주류 형식으로, 청중들에게 친숙한 부분이었습니다.

존 케일 John Davies Cale (베이스, 비올라)이 추구한 미니멀리즘과 아방가르드 실험 정신이 더해졌습니다. 클래식 교육을 받은 케일은 실험 음악의 선구자인 ‘라 몬테 영 La Monte Thornton Young’과 함께 작업한 경험을 바탕으로 음향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했습니다.

프리 재즈에서 영향받은 즉흥 연주와 거친 기타 피드백, 노이즈 사운드가 가미되었습니다.

의도적으로 불편하고 거친 사운드를 구성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은 당시 청중들에게 난해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논란의 가사

대중에게 외면받은 이유는 실험적인 사운드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라디오 방송은 앨범 홍보의 핵심 채널이었습니다. 하지만 [ 바나나 앨범 ]의 곡들은 전파를 탈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수록곡들이 마약, 매춘, 동성애 등 사회에서 금기시되던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송국 입장에선 굳이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 바나나 앨범 ]을 대중에게 소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결국 음반사도 앨범 홍보를 사실상 포기하면서 판매량은 더욱 저조해졌습니다.

 

후대의 재평가 :
시대를 앞서간 명반의 귀환

당시에는 “너무 앞서 나갔다.”며 외면받았던 (실험적인 사운드, 과감한 주제, 선정성 논란의 앨범커버 등) 요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혁신의 시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됩니다.

“워홀의 현대미술 감각과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실험정신이 제대로 만개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했을 뿐”   「Artforum」

“500대 명반 중 5위로 선정”   「NME」
“역대 명반 중 4위”   「Acclaimed Music, 어클레임드 뮤직」

밴드들의 교과서 :
‘밸벳 언더그라운드’의 [ 바나나 앨범 ]

[ 바나나 앨범 ]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보다 밴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점입니다.
후배 뮤지션들이 밸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에서 받은 영감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평단과 대중이 [ 바나나 앨범 ]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5년 동안 3만 장, 10년이 지나서야 10만 장을 넘긴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했지만, 음악을 감상한 사람들이 느낀 감정은 결코 저조하지 않았던 겁니다.

“앨범을 산 모두가 밴드를 결성했다”

브라이언 이노 Brian Eno는 한 인터뷰에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1집은 만 장밖에 팔리지 않았지만, 그걸 산 사람들은 모두 밴드를 시작했다.”라는 농담을 남겼습니다.
“The first Velvet Underground album only sold 10,000 copies, but everyone who bought it formed a band.”

이후 이 문구는 “(5년간) 3만 장이 팔렸고, 그 3만 명 모두가 밴드를 결성했다”로 변주되며, 이 앨범이 후대 창작자들에게 얼마나 강력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는지를 상징하는 유명한 문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많은 장르가 [ 바나나 앨범 ]이 보여준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됩니다.
펑크 록, 개러지 록, 얼터너티브 록, 익스페리멘탈 록, 크라우트 록, 뉴웨이브, 고스, 노이즈, 슈게이징 ……

“펑크, 뉴웨이브, 얼터너티브 록의 기원을 알린 전설적인 작품”
“처음에는 외면받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언더그라운드를 넘어 수많은 후배 뮤지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NME」

“록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앨범 중 하나”   「Rolling Stone」

 

시대를 반영 vs 시대가 수용

현재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The Starry Night]외면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예술사에는 당대에 이해받지 못했으나 후대에 위대한 작품으로 재평가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 별이 빛나는 밤에 ] 또한 외면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화가들의 교과서 :
빈센트 반 고흐 [ 별이 빛나는 밤에 ]

종종 ‘감정이 과잉된 미숙한 화가’라는 평가를 받던 고흐의 작품들은 그가 활동하던 내내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혼자만의 세계를 화폭에 옮기던 고흐는 결국 외롭게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빈센트 반 고흐 - 별이 빛나는 밤에 - The Starry Night
빈센트 반 고흐 [ 별이 빛나는 밤에, The Starry Night, 1889, 실크스트린, 73.7×92.1㎝, 뉴욕 · MoMA 미술관 ]
작품 배경 :
생레미 정신요양원

1889년 6월, 고흐는 프랑스 남부 생레미 Saint-Rémy의 정신요양원에 머물며 [ 별이 빛나는 밤에 ]를 완성했습니다.
고흐는 밤하늘의 별빛을 단순히 눈에 보이는 모습이 아닌, 마치 에너지소용돌이치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표현했습니다. 고흐의 마음속 감정이 표현된 [ 별이 빛나는 밤에 ]는 깊은 푸른색 하늘과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별들, 그리고 마을 위로 솟아오른 사이프러스 나무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고흐의 독창적인 표현 방식은 어색하고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내면 풍경’ :
개인 심리 체험의 시각화

[ 별이 빛나는 밤에 ]는 고흐가 요양소 창문가에서 바라본 밤하늘의 기억을 더듬어 그렸다고 전해집니다. 실제 풍경을 보이는 데로 그리는 것을 넘어, 자신의 내면 세계를 표현한 이 그림은 당시로서는 매우 낯선 시도였습니다.
고흐는 자연의 모습을 묘사하기보다 자신의 감정과 심리 상태를 강렬한 붓 터치와 색채로 표현했습니다. 고흐의 표현 방식은 훗날 ‘표현주의’로 명명되는 작가들의 특징을 미리 보여줍니다.

‘표현주의’를 예고

표현주의 Expressionism
20세기 초 유럽에서 발생한 예술 운동으로, 작가의 내면 감정과 주관적 심리를 강렬한 색감과 왜곡된 형태로 과장되게 드러내는 특징을 지닙니다.

20C가 시작될 무렵 고흐의 거친 붓 터치와 강렬한 감정 표현, 왜곡된 원근과 심리적 긴장감에 주목하는 이들이 하나둘 생겨났습니다. 내면의 감정을 그림에 투영 projection하는 ‘표현주의’ 방식은 앞서 고흐가 선보였던 표현 방법과 맞닿아 있습니다.
→  ‘표현주의 & 초기 추상 미술’을 예고한 ‘고흐의 그림들’ (작성중)

점차 예술계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고흐의 그림을 연구하고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정신분석학의 발전과 함께 고흐가 그림에 남긴 심리 상태가 깊이있게 연구 되고 있습니다.
→ 빈센트 반 고흐 [ 구두 ]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과 논쟁 : 하이데거 vs 샤피로 vs 데리다 (작성중)

과거에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던 고흐의 소용돌이치는 표현과 강렬한 붓 터치는 오늘날 예술 애호가뿐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고흐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친숙한 이미지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저평가 vs 재평가

[ 바나나 앨범 ]과 [ 별이 빛나는 밤에 ]는 기존 관습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예술 비전을 추구했습니다. 동시대에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던 두 작품이 이후 세대에서 재평가되었다는 사실은, 예술의 가치가 항상 동시대 사람들의 평가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예술 작품의 가치는 완성된 그 순간에 고정되지 않습니다. 혁신적인 예술 작품은 종종 기존의 관습과 기대를 벗어나, 이해받지 못하거나 거부당하기도 합니다.
저평가되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저평가라는 말에는 ‘재평가’될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시대성 : 한 시대를 반영한다
보편성 : 긴 세대를 관통한다

‘시대성’은 보통 한 시대를 반영하는 반면, ‘보편성’은 여러 세대를 관통합니다.
특정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시대를 온전히 관찰하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시대성은 그 시대가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시대는 특정한 감정과 정신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때로는 해방시켰구나!”라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해’ 또한 시대에 따라 조금씩, 때로는 크게 달라집니다.

[ 바나나 앨범 ]과 [ 별이 빛나는 밤에 ]는 예술이 지닌 ‘저평가 vs 재평가’ㆍ’시대성 vs 보편성’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대중과 평단의 시선이 변화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빈센트 반 고흐 [ 별이 빛나는 밤에 ] : ‘시대성 vs 보편성’ (작성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