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가 된 앨범아트 2 . 비틀즈 [ 화이트 앨범, 1968 ]
- 미니멀리즘 : ‘텅 빈 켄버스’에 담긴, 비틀즈의 다양한 음악세계
- 희소성 & 가치 : ‘79만 달러’에 낙찰된 중고 레코드판
1968년에 발표된 비틀즈의 아홉 번째 정규 앨범 ‘The Beatles’는 ‘빈 캔버스’를 연상시키는 순백의 디자인으로 [ 화이트 앨범, The White Album ]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비틀즈는 당시 예술계에 이제 막 선보인 ‘미니멀리즘’을 적극 받아들여, 당시 음악계에서 유행하던 화려한 커버와는 정반대의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하얀색의 앨범아트에는 = 비틀즈의 앞선 예술 감각과 함께 + ‘The Beatles’라는 단어가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밴드의 자신감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2015년, 비틀즈의 예술 감각과 자심감을 다시 한번 확인 받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79만 달러’에 낙찰된 중고 LP
2015년, 비틀즈의 [ 화이트 앨범 ] 초판본 중 하나가 경매에 출품됩니다. [ 화이트 앨범 ]의 초판은 이전에도 종종 경매에 등장했지만, 이번 경매는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받으며 낙찰 예상가를 점치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관심의 이유는 출품된 [ 화이트 앨범 ]이 초판 중에서도 첫 번째를 인증하는 고유번호 ‘0000001번’이 짝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앨범을 출품한 사람이 비틀즈의 드러머 ‘링고 스타’라는 점이 알려지자, 가품에 대한 우려까지 해소되면서 수집가들을 더욱 설레게 합니다.
결국, [ 화이트 앨범 – No.0000001 ]의 최종 낙찰가는 79만 달러 (약 10억 원)를 기록합니다. 낙찰 예상가 4~6만 달러를 크게 상회하는 금액이었습니다.
‘희소성’이 선사하는 ‘가치’
[ 화이트 앨범 ]은 여전히 전 세계 수집가들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앨범 중 하나입니다. 그 이유에 ‘희소성 scarcity’ 그리고 ‘가치 value’ 라는 개념이 밀접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고유번호’가 부여된 최초의 대중음악 앨범
[ 화이트 앨범 ]의 초판은 얼핏 보면 단순한 흰색인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엠보싱 처리된 ‘The Beatles’가 비스듬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모서리 하단에 오늘의 주인공 ‘고유번호 Serial Number’가 찍혀 있습니다.

개별화 Personalization
작은 디테일 한두개가 상품을 작품처럼 특별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한정판에 부여된 고유번호나 제품마다 조금씩 다르게 처리한 마감 처럼 사소하지만 중요한 요소들은, 구매자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것’이라는 감정을 일으킵니다.
[ 화이트 앨범 ]의 커버 디자인을 담당했던 팝 아티스트 리처드 해밀턴 Richard Hamilton은 “대량 생산된 레코드에서 한정판의 개념을 만들려고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마치 한정판 판화 처럼 일련번호를 부여해서, [ 화이트 앨범 ]의 가치를 상품 이상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입니다.
‘고상한 예술을 소비한다’
‘0000001’부터 시작되는 개별번호 덕분에 구매자들은 ‘세계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앨범’이라는 만족감을 갖게 됩니다. 고유번호는 대량 생산되는 상품임에도 마치 한정판 예술 작품처럼 ‘소장 가치’를 떠올리도록 정교하게 의도된 디자인 요소입니다. 마치 한정판을 구입하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 해밀턴의 의도는 주요했습니다
비틀즈의 팬들은 각기 다른 번호가 부여된 앨범을 구입하면서, ‘비틀즈 & 리처드 해밀턴’의 작품을 소장했다는 느낌을 공유했습니다.
초판 중의 초판 : 희소성 & 소장 가치
‘구하기 힘든 물건일수록 귀한 대접을 받으며 가치가 상승한다’는 말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되는 상식입니다. 그러나 1,60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간 대중음악 앨범이 구하기 힘든 물건이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 화이트 앨범 ]은 정해진 수량만 생산한 한정판도 아니었습니다.
유명한 아티스트 리처드 해밀턴의 디자인으로 품격을 높이고, 고유번호를 부여해 소비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개별화’ 전략도 성공적으로 접목되었지만, 그것만으로 1장의 레코드판이 79만 달러 (약 10억 원)에 거래되지는 않습니다. (참고로 화이트 앨범은 더블 앨범 입니다)
보통 명반으로 평가되는 유명 앨범의 초판은 소장 가치를 인정받아 출시가보다 몇 배, 많게는 몇십 배 정도로 거래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 화이트 앨범 ]의 경우, 몇 가지 우연한 사건들이 겹치면서 여느 예술품보다 높은 금액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게 됩니다.
한정판으로 여겨지는 ‘초판 + 앞번호’

1978년 재발매된 [화이트 앨범]에는 ‘The Beatles’ 부분의 엠보싱 처리가 생략되고 평면으로 인쇄됩니다. 음악 감상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부분이지만, 비틀즈 팬들 사이에서 1968년 11월에 출시된 [화이트 앨범] 초판의 예술성과 소장가치가 인정받으면서 ‘엠보싱 로고 + 고유번호’는 중요한 가치평가 기준이 됩니다.
그러나 비틀즈 팬들 사이에서 ‘엠보싱 로고 + 고유번호’가 중요한 가치평가 기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과거(1968년 11월)에 발매된 [ 화이트 앨범 ] 초판의 ‘예술성 + 소장가치’가 더욱 상승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앞 번호가 찍힌 초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높은 희소성을 인정받으면서, 전 세계 음반 수집가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대표적인 희귀 아이템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첫 번째 프레스 제품 First Pressing
[ 화이트 앨범 ] 수집가들에게 ‘초기 프레스 버전’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 첫 생산된 LP판 : 바이닐 레코드 Vinyl Record 의 재료는 일반적으로 PVC(폴리염화비닐)로 불리는 플라스틱 입니다.
소리 정보가 새겨진 금속판 사이에 PVC를 올려놓고 프레스 기계로 열을 가하면서 눌러주면 레코드판이 만들어집니다.
Google Arts & Culture – 소리를 담아내다: 레코드판의 제작과정
- 양각 & 음각 처리된 앨범커버 (Blind embossing) : 두툼한 종이를 프레스 기계로 눌러 새긴 ‘The Beatles’와 ‘고유번호’
생산과정에서 낮아진 엠보싱
초기 생산된 [ 화이트 앨범 ] 중에서도 앞번호를 소장하려는 수집가들이 많아지면서, 가품을 만들어 파는 사기꾼들이 등장합니다. 게다가 엠보싱으로 처리된 ‘The Beatles’ 글자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눌려 진품이 가품으로 오해 받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습니다.
고액을 지불하고 진품을 구하려는 사람 입장에선 진위 여부 판단이 어려운 제품보다 수월한 제품을 선호하는게 당연합니다.
어느 날 “생산 초기 만들어진 100장의 글자는 높이 0.5mm로 제작되고, 이후 대량 생산 과정에서 기술 한계로 엠보싱 높이가 0.2mm로 줄어들었다”는 이야기가 생산에 참여한 관계자로부터 흘러나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촉감만으로 진위를 판별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 등장해 진품 판정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점차 ‘No.000001 ~ 000100’ [ 화이트 앨범 ]은 수집가 들 사이에서 ‘초판 중의 초판’이라는 프리미엄이 붙어 그 가치가 더욱 상승됩니다.
‘엠보싱 높이가 진품을 보장한다’는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떠나 도톰한 엠보싱 처리가 살아있는 [ 화이트 앨범 ]은 보관상태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최근 경매에서는 경매전 X선 형광 분석(XRF) 기술로 잉크 성분을 분석해 진품 여부를 감별하고 있습니다. 미술품 감정에 사용되는 방법입니다.
경매에서 볼수없는 ‘No.000001 ~ 000004’

처음 만들어진 4개의 [ 화이트 앨범 ]은 비틀즈 멤버들이 한장씩 나눠 갖았습니다. 팬들 사이에선 경매가 예고 될 때마다 이번에는 비틀즈 맴버가 소장한 앞번호의 앨범이 등장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헛소문이 반복되면서 팬들의 기대도 점차 시들해 집니다.
그러던 중 ‘링고 스타’가 소장하고 있는 앨범이 경매에 등장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 줄리앙 옥션은 트위터를 통해 [ No.000001 – 화이트 앨범 ]의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옥션 측의 낙찰 추정가는 4~6만 달러였습니다.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옥션 사상 최고가를 갱신, 79만 달러를 기록합니다.
이처럼 동일한 디자인의 대량 생산품도 ‘희소성’이라는 요소가 가미되면 전혀 다른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비틀즈의 [ 화이트 앨범 ]

[ 화이트 앨범 ]이 미술품과 비교 되는 또 다른 이유는 크고 작은 미술 전시에 종종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2013년에는 [ 화이트 앨범 ]만 등장하는 전시에 초판본 693개가 동시에 전시되기도 했습니다.
하얀색이 담아낸 세월의 흔적
수집가들은 화이트 앨범의 음질 상태뿐만 아니라 자켓의 보존 상태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얀 자켓이 변색되거나 손상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깨끗한 상태를 유지한 앨범은 더욱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반대로 세월의 흔적을 고스한히 간직한 앨범들을 주목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술가 러더퍼드 창 Rutherford Chang은 변색되고 손때 묻은 [ 화이트 앨범 ]을 수집하는 ‘We Buy White Albums’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그가 수집한 693개의 [ 화이트 앨범 ]들은 2013년 맨해튼의 Recess Gallery에서 전시되었습니다.
러더퍼드 창의 인터뷰 :
- “화이트 앨범은 시간이 지나며 변색되고 손상될수록 더욱 독특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 “시간의 흔적이 담긴 의미를 탐구한 전시입니다.”
전시된 [ 화이트 앨범 ]들은 마치 빈 캔버스처럼 비틀즈의 음악을 즐긴 사람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693개의 [ 화이트 앨범 ]들은 물질 가치와 추억의 가치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