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년 전, 우리 선조들의 뷰티 시크릿을 찾아서
고대 동아시아의 화장과 장신구 문화는 미(美)에 대한 감각을 단순히 꾸미는 데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신분과 종교적 의미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특히 통일신라(676~935년)와 발해(698~926년) 동 시기에 발전한 미용 문화는 매우 화려하고 다채로웠다고 전해집니다.
발굴된 유물과 문헌 자료를 통해 살펴본 이 시기의 화장 도구와 장신구는 당대의 생활상과 교류 양상까지 보여주며, 오늘날의 미용 패턴과도 흥미로운 연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본 포스팅에서는 통일신라와 발해 시대의 화장 문화적 특징, 장신구의 종류와 쓰임새, 현대 미용 문화와의 비교, 그리고 발굴 유물의 모습과 이슈를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K-뷰티가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잡은 지금, 우리의 뿌리인 고대 한반도의 화장문화는 어떠했을까요?
통일신라와 발해 시대의 화장문화는 현대의 뷰티 트렌드와 놀랍도록 유사한 면이 많습니다.
특히 통일신라시대에는 불교 문화의 영향으로 화장이 크게 유행했으며, 도장무늬토기와 같은 특별한 화장품 용기가 제작되었습니다.
1. 고대의 화장품 용기, 현대 럭셔리 뷰티의 시작
통일신라 시대의 화장품 용기는 대부분 도자기였으며, 향유와 머릿기름을 담는 작은 유병, 분과 연지를 담는 뚜껑 달린 합 등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당시 화장품 용기의 예술성입니다.
현대의 명품 화장품 패키지처럼, 당시의 화장품 용기도 신분과 취향을 드러내는 중요한 미적 오브제였습니다.
화장품 용기의 예술적 가치
통일신라 시대의 화장품 용기는 단순한 용기를 넘어 예술품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도장무늬토기는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되었으며, 뚜껑과 몸체가 분리되지 않도록 고리를 부착하는 등 실용성과 미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했습니다.
1) 통일신라 시대 화장 문화의 배경
통일신라 시대에는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하면서 다양한 예술이 발달하였다. 삼국 통일을 전후해 중국 당나라의 외래 문물을 적극 수용하였는데, 유행 의복과 함께 화장품, 고급 장신구, 금·은 세공품 등이 신라로 유입되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신라 시기에는 이미 여러 가지 화장품이 개발돼 고도의 화장 기술이 존재했으며, 영육일치(靈肉一致) 사상과 더불어 인간의 신체를 장엄하게 꾸미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전해진다.
통일신라 시대에 화장 문화가 더욱 꽃을 피운 것은 왕실과 귀족 계층을 중심으로 한 사치와 탐미주의적 기풍이 확산된 데에 그 이유가 있다. 고분 발굴 자료와 문헌을 통해, 당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특히 화랑)도 화장을 즐겨 하고 귀고리·가락지·팔찌·목걸이 등의 장신구를 활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외모 가꾸기를 여성에게만 국한하지 않고, 사회 전반에서 하나의 문화적 흐름으로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2) 통일신라 시대의 화장 도구와 기능
통일신라 시기의 화장 도구로는 연지와 분을 바르는 데 쓰이는 각종 필기구나 면봉, 새부리 모양의 작은 숟가락 같은 장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또, 고급 금속과 상아·나무 등을 활용하여 제작된 빗, 화장품을 담는 용기, 그리고 거울 등이 출토된 것으로 파악된다. 일부 유물은 서역에서 직수입되었거나 당나라를 거쳐 전해진 것으로 보이며, 지금의 파운데이션 혹은 파우더 역할을 했던 물질에 해당하는 가루화장품 용기도 발견되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기록에 의하면 흥덕왕 때 개정된 복식금제(服飾禁制)에서도 금으로 만든 화려한 옷감이나 장신구 사용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을 정도로 귀족의 사치풍조가 만연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통일신라에서 발전한 화장기술과 사치품 사용은 당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수입된 물질·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이처럼 통일신라에서 발전한 화장기술과 사치품 사용은 당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수입된 물질·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라는 금·은 세공품, 인삼 등을 주로 당나라에 수출하고, 풍부한 비단이나 서적, 도자기 등을 활발히 받아들였다고 하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화장 재료와 기법도 함께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귀족과 왕실뿐 아니라 일반 계층에서도 언젠가부터“얼굴을 밝게 하고 눈썹을 곱게 그리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는 현존하는 고분 벽화나 사찰 벽화에서 당시 인물 표현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3) 발해 시대의 미용 문화
한편 발해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 등을 중심으로 대조영이 건국한 나라로, 북방 요소와 당나라의 문화적 특징을 동시에 받아들이면서 독특한 미용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발해는 동모산(東牟山)을 근거로 세워진 뒤 수도를 상경 용천부, 중경 현덕부 등으로 옮겨 사회·정치 구조가 안정되자 귀족 중심의 화려한 생활양식을 누렸다. 발해의 귀부인들 역시 신라 못지않은 사치 풍습을 보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일부 금속 장신구·유리 제품들이 출토된 기록이 보인다. 발해 귀족 여성들은 각종 금령(금 장식), 백금 반지, 여러 종류의 팔찌나 목걸이 등을 애용했을 것으로 보이며, 모피와 비단을 섞어 입은 복식 위에 화장을 장식적으로 더했다는 분석이 있다.
비록 통일신라와 달리 발해의 실물 유물은 발굴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세부적인 화장 기법을 명확히 알기 어려우나, 고분에서 발견된 십자가 형태의 유물이나 서역풍 문양이 들어간 장신구 등을 통해 이전 시기에 비해 상당히 국제적인 요소가 가미된 사례가 확인된다4. 당시에 서역에서 전해진 각종 화장 혹은 의복 기술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발해의 화장 도구 또한 동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며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2. 통일신라와 발해의 화장 문화 차이점
통일신라는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화장이 성행했으며, 특히 귀족층에서는 화려한 화장문화가 발달했습니다. 반면 발해는 고구려의 전통을 이어받아 상대적으로 자연스러운 화장을 선호했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화장의 사회적 의미
당시 화장은 단순한 미용을 넘어 신분과 계급을 나타내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통일신라: 영육일치사상과 계급 표현
통일신라에서는 “아름다운 육체에 아름다운 정신이 깃든다”는 영육일치사상이 화장의 철학적 기반이었습니다. 화장은 단순히 외모를 꾸미는 것을 넘어 내면의 고결함과 조화를 이루는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귀족 계층에서는 금과 은으로 장식된 장신구와 함께 화려한 화장이 신분을 상징했습니다. 이러한 문화는 불교의 영향으로 더욱 강화되었으며, 신체의 청결과 순수함을 중시하는 목욕 문화와도 연결되었습니다.
발해: 다문화적 요소와 실용성
발해에서는 고구려 전통과 북방 민족의 문화가 융합되어 자연스러운 화장과 실용적인 장신구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발해의 귀족들은 고구려에서 이어진 섬세한 장신구 제작 기술을 유지하면서도, 중국 당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세련된 미적 감각을 발전시켰습니다. 발해 고분에서 발견된 십자가 장식물은 기독교와의 접촉 가능성을 암시하며,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혼재된 발해의 독특한 미적 특성을 보여줍니다.
화장의 사회적 역할
두 왕국 모두에서 화장은 단순한 외모 치장이 아니라 사회적 계급, 종교적 신념,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하는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통일신라에서는 귀족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화랑도들이 화장을 즐겼으며, 이는 현대의 남성 뷰티 트렌드와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반면 발해에서는 실용성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며, 다양한 민족적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의 조화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습니다.
3. 고대의 화장품 성분과 제조법의 비밀
통일신라 시대에는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화장품을 만들었습니다.
미분(米粉)은 쌀가루로 만든 파우더였으며, 연지는 홍화에서 추출한 천연 색소를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자연 친화적인 화장품 제조법은 현대의 클린뷰티 트렌드와도 맥을 같이합니다.
발굴된 화장품의 성분 분석
최근 경주 지역에서 발굴된 화장품 용기에서는 당시 사용된 화장품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과학적 분석 결과, 현대의 BB크림처럼 보습과 커버 효과를 동시에 가진 제품들이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4. 고대 화장품의 보존은 어떤 방법으로?
가장 궁금한 점은 당시 화장품의 보존 방법입니다. 천연 재료로 만든 화장품을 어떻게 오랫동안 보관했을까요?
도장무늬토기의 밀폐력과 항균 작용이 있는 재료의 사용이 해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화장품은 미용뿐 아니라 종교적·의학적 목적을 가진 중요한 문화적 산물이었습니다. 천연 재료로 만들어진 화장품은 변질되기 쉬웠기에, 이를 보존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이 사용되었습니다.
밀폐 용기의 사용
통일신라 시대에는 도기나 자기로 만든 밀폐 용기를 사용해 화장품을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했습니다. 특히 도장무늬토기와 같은 용기는 밀폐력이 뛰어나 화장품의 변질을 최소화하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항균 성분의 활용
고대인들은 항균 작용이 있는 천연 성분을 활용해 화장품의 보존성을 높였습니다. 예를 들어, 이집트에서는 동물성 지방과 식물성 오일에 향료나 수지를 첨가해 산패를 방지하며 피부 보호 효과도 제공했습니다.
작은 용기와 정량 생산
작은 용기에 소량으로 저장하는 방식도 보편적이었습니다. 이는 재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변질 가능성을 줄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집트와 그리스에서는 알라바스터나 유리로 만든 소형 용기가 사용되었습니다.
현대 연구와 복원
오늘날 과학 기술을 통해 고대 화장품의 성분과 제조 과정을 복원하는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이는 고대인들의 자연 자원 활용과 보존 기술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고대의 보존 기술은 단순한 저장 방법을 넘어선 문화적·과학적 지혜의 산물로, 현대 뷰티 산업에도 여전히 영감과 기대를 주고 있습니다.
5. 화장 도구와 장신구 발굴 유적의 현재 모습
통일신라와 발해 시대의 화장 도구와 장신구는 주로 고분, 절터, 궁성지 등에서 발굴되어 현재 박물관과 연구 기관에 보관·전시되고 있다. 통일신라 시기의 굴식 돌방무덤은 봉토의 규모가 작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발굴 과정에서 장신구나 미용용품이 다량으로 출토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러한 유물들은 당시의 화려한 금속 장식과 섬세하게 세공된 보석, 그리고 정교한 화장품 용기를 통해 선조들의 뛰어난 미적 감각과 기술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반면, 발해 유적지는 북한, 러시아, 중국 등 북방 지역에 분포해 있어 지리적·정치적 제한으로 인해 발굴 조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해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는 십자가 장식물이 포함되어 있어 기독교와의 접촉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발굴된 사례가 적어 추가적인 자료 축적이 필요하다.
화장문화 유산의 현대적 계승
이러한 유물들은 국내외 박물관과 전시회를 통해 그 아름다움을 간접적으로나마 감상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과 경주박물관에서는 통일신라와 발해 시대의 화장 도구와 장신구를 전시하며, 이를 통해 과거 미용 문화의 정수를 현대인들에게 알리고 있다.
더불어 학계에서는 보존 과학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유물을 3D 스캐닝하고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과거 미용 문화를 학제 간 연구로 확장하는 움직임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고대의 화장문화 유산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재조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6. 현대에 되살아난 고대의 뷰티 비법
고대 한반도의 화장문화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를 넘어, 현대의 뷰티 트렌드와 철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통일신라와 발해 시대의 화장문화는 자연 성분을 활용한 화장품 제조와 피부 본연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기법을 통해 오늘날 K-뷰티의 근간을 형성했습니다. 이들의 뷰티 비법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미적 철학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자연에서 찾은 뷰티 비법
통일신라와 발해 시대에는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화장품을 만들었습니다. 쌀가루로 만든 파우더인 ‘미분’과 홍화에서 추출한 천연 색소로 만든 연지는 피부를 보호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했습니다. 이러한 자연 친화적인 접근 방식은 오늘날 클린뷰티와 친환경 화장품 트렌드와 맞닿아 있습니다. 현대의 소비자들은 고대의 지혜를 바탕으로 한 성분 중심의 화장품을 선호하며, 피부 본연의 광채를 살리는 메이크업 기법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내면과 외면의 조화: 동아시아 미학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내면적 아름다움과 외면적 아름다움의 조화를 중시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외모를 가꾸는 데 그치지 않고, 인격과 정신적 완성을 추구했던 미학적 전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철학은 현대에도 이어져, 단순한 외모 치장이 아닌 건강한 라이프스타일과 웰빙을 중시하는 뷰티 문화로 발전했습니다. 예컨대, 요가나 명상과 같은 내면적 활동이 현대 뷰티 루틴에 포함되는 것은 이러한 전통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대 미용 문화에서 시작된 현대 K-뷰티
현대 K-뷰티는 혁신적인 기술력과 다양한 제품군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뿌리를 살펴보면, 통일신라와 발해 시대의 화장문화에서 이미 상당히 전문화된 미용 기술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당나라와 교류하며 얻은 지식으로 붉은 연지와 하얀 분이 대중화되었으며, 골격이나 눈썹 모양에 따라 화장을 달리하는 섬세함까지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개인별 맞춤형 메이크업 트렌드와도 유사합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를 위한 아름다움
특히 통일신라 시대에는 남성도 화장을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화랑도는 여성 못지않게 자신을 꾸미고 다양한 장신구를 사용했으며, 이는 오늘날 남성을 위한 전용 화장품과 패션 라인의 활성화와도 맥을 같이합니다. 또한 고급 소재로 제작된 의복과 장신구는 당시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였는데, 이는 현대 명품 브랜드 소비 문화로 이어지는 인간의 보편적 욕구를 보여줍니다.
현대에 되살아난 고대의 철학
고대의 뷰티 비법은 단순히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자연 성분을 기반으로 한 친환경 화장품, 내면과 외면의 조화를 중시하는 웰빙 트렌드, 그리고 개성을 살리는 맞춤형 메이크업까지—이 모든 것이 고대 한반도의 미용 문화에서 시작된 유산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 연결고리는 우리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뷰티를 추구하도록 영감을 줍니다.
현대 K-뷰티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지금, 통일신라와 발해 시대의 뷰티 철학은 단순히 역사적 유물이 아닌,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지혜로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7. 앞으로의 연구 과제와 궁금증
통일신라와 발해 시대의 화장 도구와 장신구는 고대 동아시아 미용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당시 화장품 용기의 사용 방식, 재료와 기법의 보급 과정 등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발해 유적은 북방 지역에 위치해 외교적 문제로 발굴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아, 국제 공동 연구와 첨단 과학 기법을 활용한 유물 분석이 필요합니다.
또한, 남아 있지 않은 미용 기구에 대한 연구는 문헌 기록이나 타국의 비교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디지털 복원 작업과 체계적인 자료 축적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고분 벽화나 불상에 표현된 인물상의 눈썹, 입술 색채, 귀족들의 관과 보관 유형을 분석하면 당시 화장 기술의 흔적을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통일신라와 발해 시대의 화장 도구와 장신구를 통해 본 고대 동아시아 미용 문화는 한국사에서 중요한 풍속사적 가치를 지님과 동시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시사점을 낳습니다.
통일신라와 발해 시대의 화장 도구와 장신구는 단순한 장식품을 넘어 사회, 종교, 정치, 예술 등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반영한 총체적 현상이었습니다. 특히 국제 교류가 활발했던 통일신라의 유물은 당시 사람들의 다채로운 미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오늘날에도 화장과 액세서리가 자기 표현의 중요한 수단인 만큼, 천 년 전 유물에서도 현대와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적극적인 발굴과 복원 연구를 통해 고대 미용 문화를 생생히 되살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