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의 예술적 걸작,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전설과 과학적 비밀을 탐구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에 얽힌 전설과 과학적 사실을 함께 살펴봅니다.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은 오랫동안 아이를 희생해 만든 종이라는 전설로 알려져 왔습니다. 특히, 종에서 들려오는 특유의 소리는 이러한 이야기에 신비로움을 더하며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이 전설이 사실이 아님을 밝혀냈고, 그 대신 종의 독특한 음색과 정교한 제작 기술이 신라인들의 뛰어난 금속공예와 음향학적 지식을 보여주는 증거임을 입증했습니다.
이번 글에서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에 얽힌 전설과 과학적 사실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종의 제작 기술, 독특한 음색의 비밀, 그리고 종에 새겨진 문양의 의미를 통해 통일신라 금속공예의 정수를 탐구합니다.
천년을 넘어 울려 퍼지는 소리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은 통일신라 시대의 예술과 기술이 절정을 이루던 8세기 중반, 771년에 완성된 걸작입니다. 이 종은 단순한 불교 의식구를 넘어 당시 신라인들의 뛰어난 금속공예와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종 제작은 신라 35대 경덕왕(재위 742~765)이 아버지 성덕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성덕왕은 통일신라의 전성기를 연 군주로,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경덕왕은 봉덕사에 걸 큰 종을 주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경덕왕은 생전에 이를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뜻은 아들 혜공왕(재위 765~780)에게 이어졌고, 마침내 771년, 구리 약 12만 근을 사용한 웅장한 규모의 종이 완성되었습니다.
완성된 성덕대왕신종은 높이 약 3.75m, 입지름 약 2.27m, 무게 약 18.9톤으로,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술적 도전이었습니다. 종은 처음 봉덕사에 걸렸으며, 그 이름 또한 ‘봉덕사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후 조선 시대를 거치며 여러 장소를 옮겨 다녔고, 현재는 경주 국립박물관에서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 종의 독특한 소리는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울려왔습니다. 특히, 종소리가 멀리까지 퍼져 나가는 맑고 깊은 울림은 신라인들의 뛰어난 음향학적 지식을 반영합니다. 이러한 소리는 단순히 기술적 성과를 넘어 당시 사람들의 불심과 예술적 열정을 느끼게 합니다.
전설로 남은 ‘에밀레종’ 이야기
아이 울음소리로 불린 이름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은 전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전설은 종 제작 과정에서 실패가 계속되자 한 아이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퍼지며 시작되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아이를 끓는 쇳물에 넣은 후 종이 완성되었고, 종소리에서는 마치 아이가 어머니를 부르는 듯한 “에밀레~ 에밀레~”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종의 신비로움을 극대화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습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적 분석 결과, 이 전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1998년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이 성덕대왕신종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사람의 뼈에 포함된 화학 성분인 인(燐)이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사람이 희생되었다는 증거가 없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대신 종소리의 독특한 여운과 음색이 이러한 전설을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에밀레종의 소리는 맥놀이 현상으로 인해 긴 여운과 반복적인 울림이 특징이며, 이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와 비슷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전설의 기원과 변천
흥미롭게도 ‘에밀레종’ 전설은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와 같은 고대 문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19세기 말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처음 기록되었으며,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중화되었습니다. 특히, 1925년 매일신보에 실린 동화와 1943년 상연된 희곡 <어밀네 종>이 이 전설을 널리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사회적 혼란과 민중의 고통이 반영된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또한, 일부 학자들은 이 전설이 신라 왕실의 정치적 상황을 반영한 은유라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의 희생은 권력 투쟁 속에서 희생된 혜공왕을 상징하고, 아이를 제물로 바친 어머니는 당시 권력을 쥐락펴락했던 만월부인을 나타낸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에밀레종 전설은 단순한 설화가 아니라 신라 중대 왕실의 비극적 역사를 담고 있는 상징적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에밀레종’이라는 이름과 전설은 종 자체의 독특한 소리와 당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형성된 문화적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사실이 밝혀진 오늘날에도 이 이야기는 여전히 에밀레종의 신비로움을 더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성덕대왕신종의 독창적 디자인과 기술
문양과 조각: 신라 예술의 극치
성덕대왕신종은 통일신라 시대 금속공예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으로, 그 표면에는 다양한 문양과 조각이 새겨져 있습니다. 종신(鐘身)에는 연꽃 문양과 함께 하늘을 나는 천인상인 비천상(飛天像)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연꽃은 불교에서 극락정토를 상징하며, 비천상은 천상의 존재가 공양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종교적 신비로움을 더합니다. 특히, 이 비천상은 연화좌 위에 무릎을 꿇고 손잡이 달린 향로를 받쳐 들고 있는 모습으로, 당시 신라인들의 뛰어난 조각 기술과 예술적 감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종의 어깨 부분에는 여덟 가지 음을 상징하는 여덟 송이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이는 극락정토에 피는 상상의 꽃인 보상화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또한,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는 연꽃 모양으로 표현되어 있어 종의 기능적 요소와 장식적 요소가 완벽히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섬세한 조각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종의 음향학적 성능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설계된 것으로, 신라인들의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음향학적 걸작
성덕대왕신종은 단순히 아름다운 외형뿐만 아니라 독창적인 음향학적 설계로도 주목받습니다. 이 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맥놀이 현상’입니다. 맥놀이란 두 개의 음파가 서로 간섭하여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성덕대왕신종에서는 168.52Hz와 168.63Hz라는 두 주파수가 간섭하여 약 9.1초의 주기를 가진 맥놀이를 만들어냅니다. 이로 인해 종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지며 듣는 이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또한, 종 상단에 위치한 음통(音筒)은 한국 범종만의 독특한 구조로, 고주파를 외부로 잘 전달하고 저주파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음통 내부는 비어 있으며, 종체와 관통되도록 설계되어 소리를 효율적으로 증폭하고 멀리까지 전달합니다. 이러한 설계는 현대 음향공학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신라인들의 과학적 사고와 기술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힙니다.
더불어 종의 입구 부분은 꽃 모양으로 굴곡진 형태를 하고 있어 소리의 울림을 더욱 풍부하게 만듭니다. 이와 같은 구조적 특징들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리의 여운과 음색을 최적화하기 위한 치밀한 설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덕대왕신종은 이러한 예술성과 과학성이 결합된 걸작으로,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신비로운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현재와 미래: 성덕대왕신종 보존과 활용
현재 성덕대왕신종은 경주 국립박물관에서 보존되고 있으며, 주기적인 타음 조사를 통해 상태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종소리를 기록하고 재현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입니다.
방문 정보
경주 국립박물관에서 성덕대왕신종을 직접 관람할 수 있습니다.
매년 열리는 ‘신라 소리 축제‘에서는 종소리를 체험할 기회도 제공됩니다.
궁금증, 왜 ‘에밀레’라는 소리가 날까?
‘에밀레’라는 소리는 단순히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과학자들은 종 내부 구조와 맥놀이 현상이 결합되어 이러한 독특한 음색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신라인들이 얼마나 정교한 기술과 예술적 감각을 지녔는지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