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아트 & 소비사회 : ‘ 리처드 해밀턴 ’의 콜라주

모든 것에 시작이 있듯이, ‘팝 아트’에도 시작이 있습니다. 또한
모든 시작이 여러 원인과 사건들의 집합이듯, ‘팝 아트’의 시작에도 여러 이벤트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1956년 런던에서, ‘팝 아트’의 출발점 중 하나로 언급되는 중요한 전시가 열립니다.

팝 아트의 시작 : ‘ This is Tomorrow ’ 전시

다양한 분야 예술가들의 협업 :
Independent Group (art movement)

1950대 중반은 가정용 전기제품 (텔레비전, 휴대용 라디오, 진공청소기, 세탁기, 믹서기, 다리미 등)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주거 환경이 급변합니다. 그리고 변화하는 삶의 풍경을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하는 예술가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일상을 관찰해 ‘내일’의 삶을 그려보자는 아이디어에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호응합니다.

‘인간의 감각 그리고 주거’

몇 차례 세미나가 이어지고, 1955년 6월 8일 모임에서 전시 주제로 ‘인간의 감각과 주거’가 결정됩니다. 이후 세부적인 내용이 논의되면서 12개의 테마로 전시 방향이 구체화됩니다. 건축가, 화가, 조각가, 음악가, 그래픽 디자이너 등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테마에 참여하면서 12개의 작가 그룹이 구성됩니다.

1956 - This is Tomorrow - 전시 준비
1956년 ‘This is Tomorrow’ 전시를 준비중인 작가들
‘이것이 내일이다’
‘This is Tomorrow’

여러 논의 끝에 12개의 테마를 하나로 묶을 전시명이 확정됩니다. 그리고 1956년 8월 9일, 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전시 “This is Tomorrow”가 대중에게 공개됩니다.

런던의 화이트채플 갤러리 Whitechapel Gallery에는 12개의 공간이 마련됩니다. 그중 리처드 해밀턴 Richard Hamilton이 참여한 ‘그룹 2’의 공간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1956 - This is Tomorrow - 전시 - 팝 아트 - 콜라주
1956년 ‘This Is Tomorrow’ 전시 풍경
이것이 내일이다 - This is Tomorrow
2014년, 리처드 해밀턴 회고전에서 재현된 ‘This Is Tomorrow’ 전시물 – 런던ㆍ테이트 모던

“오늘날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Just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homes so different, so appealing?”

리처드 해밀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긴 제목의 ‘콜라주’입니다. 잡지 광고를 오려 만든 작품인 만큼 그 크기도 잡지 크기 (24.8 x 25 cm)입니다.

리처드 해밀턴 - This is Tomorrow - 카탈로그- 팝 아트 - 콜라주
‘This Is Tomorrow’ 전시 카탈로그
1956 - This is Tomorrow - 포스터
‘This Is Tomorrow’ 전시 포스터

많은 사람들이 오해는 부분이지만, 해밀턴의 콜라주는 당시 전시장에 전시된 작품이 아닙니다.
‘This Is Tomorrow’ 전시의 카탈로그포스터에 사용되었고, 칼라로 제작되었지만 흑백 이미지로 인쇄되어습니다.

리처드 해밀턴은 광고 이미지를 재치 있게 활용한 콜라주로 ‘팝 아트’를 처음 선보인 작가 중 한 명으로 이야기됩니다.
소비사회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그의 콜라주는 1950년대 영국에서 등장한 ‘팝 아트’의 흐름을 한 장의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리처드 해밀턴’이 콜라주한 : 1950년대 영국

1950년대 영국의 상황을 살펴보면 해밀턴의 ‘콜라주’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광고 & 소비문화’ : Consumerism

195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극복하고 경제 재건에 집중하던 시기였습니다. 전쟁은 많은 것을 파괴했지만, 동시에 눈부신 기술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잡지, 신문, TV 광고에는 최신 상품들이 여느 스타 못지않게 자신을 뽐내며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으로 초대했습니다.
상품들은 바다를 건너고 산맥을 넘어 전 세계 가정으로 배달되었습니다.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 (GE)에서 생산된 백색 가전들이 대서양을 건너 영국의 마을 곳곳에서 판매되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목격하며 영국의 예술가들은 “우리 일상에 스며든 소비사회의 이미지를 예술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팝 아트’라고 명명되는 예술계의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콜라주’된 이미지들의 의미

리처드 해밀턴 - 팝 아트 - 콜라주
리처드 해밀턴 [ Just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Homes So Different, So Appealing?, 1956 ]

“해당 콜라주는 그저 화려한 이미지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사회가 창조한 시각문화를 종합적으로 평가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작되었다” – ‘리처드 해밀턴’의 인터뷰 (1970년대 초)

삶의 질을 높여주는 가전제품
  • 냉장고, TV, 진공청소기 등
  • ‘기술 발전과 편리한 현대 생활’을 상징하는 소비문화의 아이콘
  • 최신 유행과 상품을 빠르게 수용하는 영국의 가정
광고에 활용되는 섹슈얼리티
  • 근육질 남성과 글래머 여성 ≒ 이상적 몸매의 상징 ≒ 동경하는 삶
  • “이상적인 신체와 성적 매력을 통해 상품 소비를 유도하는 광고 전략”을 작품에 끌어들인 사례로, “당대 ‘육체미’와 ‘글래머’ 코드를 대중에게 직접 보여주는 방식을 예술에 도입”했다. 「Artforum」
but, 한 걸음 멀리있는 ‘광고 속 일상’
  • 대중문화와 오락산업을 대표하는 극장 간판, 로고, 커다란 사탕
  • 실제 생활에서는 보기 힘든 ‘광고의 과장’을 극적으로 표현
  • 이러한 요소들은 “소비와 오락이 결합된 ‘팝’ 문화의 전형” 「Burlington Magazine」

 

‘팝 아트 & 대중문화’의 경계에서

리처드 해밀턴의 콜라주 작품은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현대미술 서적에서 꾸준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56년 당시에는 “너무 가볍고 저급한 이미지를 사용한다”며 강한 거부감을 보인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예술의 대중성’을 옹호하는 흐름 속에서 해밀턴의 작품은 “대중문화와 예술의 경계가 얼마든지 재편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 팝 아트는 단순히 ‘광고 흉내 내기’ 혹은 ‘컬러풀한 이미지’에 그치지 않고, 시각정보 과잉 현상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 「Artforum 」
  • 팝 아트는 ‘대중 문화와 높은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행위’ – 영국 비평가, 로렌스 알로웨이 Lawrence Alloway

해밀턴의 콜라주 이후 대중문화와 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납니다.

예술 : 대중성 vs 상업성

리처드 해밀턴은 단순히 ‘재미있다’ ‘쉽게 만들 수 있다’에 그치지 않고, 소비사회의 시각 언어(광고, 잡지, TV)를 예술의 중심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이를 통해 예술이 어떻게 ‘당대 문화’를 비판하고 추적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후 등장한 팝 아트 작가들은 리처드 해밀턴의 전략을 적극 활용해 예술품 또한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생산되는 시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하지만, ‘대중에 의한 예술’ vs 상업성 짙은 예술’의 구분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예술은 많은 비용이 소모되는 분야이며 성공의 자리 또한 매우 협소합니다. 대자본이 히트 작가를 만들어내기 쉬운 현대 예술계의 구조에서 ‘리처드 해밀턴’의 문제의식을 다시 한번 고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팝 아트’의 소비사회 예찬

팝 아트가 보여준 대중문화의 예술화는 ‘시각 문화의 민주화’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대중의 선호도가 무엇인지, 비싼 가격에 잘 팔리는 작품이 무엇인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작가들이 다수인 것이 현실이지만, “예술마저 소비 논리에 종속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팝 아트는 소비사회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에서 탄생했다고 소개되지만, ‘예쁘고 알록달록한 팝 아트’ 작품들은 소비사회를 예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리처드 해밀턴은 광고를 차용하여 진부해진 기성 예술계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주류가 되어버린 ‘팝 아트 모양’의 그림들에 경종을 울려줄 작품의 탄생이 무르익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리처드 해밀턴은 미술계를 넘어 다양한 시각예술 분야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특히 비틀즈의 9집 [ 화이트 앨범 ]의 커버 디자인은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힙니다.

화려한 이미지들을 조합한 콜라주로 명성을 얻은 해밀턴은 비틀즈 앨범을 디자인하면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텅 빈 캔버스’ 같은 순백의 디자인을 선보입니다. 

→ 리처드 해밀턴이 선보인 ‘미니멀리즘’ : 비틀즈 [ 화이트 앨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