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 협업 – 01. 예술품 생산 공장 : 앤디 워홀의 ‘The Factory’

🎨  예술 & 협업 : 예술품 생산 공장

  1. 다양한 예술·문화의 실험실 : 앤디 워홀의 ‘ 더 팩토리 The Factory ’
  2. 바로크 시대의 예술 공방 : ‘ 루벤스하우스 Rubenshuis ’ (작성중)

‘예술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고요한 방 안에서 홀로 고뇌하며 세상과 단절된 채 위대한 예술을 완성하는 외로운 천재’ 그러나 예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명작들이 여러 사람의 ‘협력과 협업‘으로 탄생해 왔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천재 : 고독한 외톨이 vs 화려한 인싸

외딴 작업실에서 홀로 캔버스와 씨름하는 위대한 예술가가 있는 반면, 여느 연예인 못지않은 화려한 행보를 통해 자신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 가는 예술가도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지인들로 북적이는 예술가의 작업실은 개인의 창작의 공간을 넘어, 여러 사람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부딪히고 섞여 새로움이 탄생하는 무대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융합으로 예술의 지평을 넓힌 대표적인 예술가가 바로 팝 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 Andy Warhol, 1928~87 입니다.

 

앤디 워홀의 ‘예술 실험실’

1962년 뉴욕 맨해튼 이스트 47번가의 한 건물에 조금은 낯선 인테리어의 공간이 문을 엽니다. 현대 예술사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시한 이 공간의 이름은 ‘더 팩토리 The Factory’였습니다.

앤디 워홀 - Andy Warhol - 실버 팩토리 - Silver Factory

문화 허브 : ‘The Factory’

다양한 예술의 교류

내부 벽면을 모두 은색 알루미늄 호일로 감싼 앤디 워홀의 작업실을 지인들은 ‘실버 팩토리 Silver Factory’로 불렀습니다. 파격적인 은빛 공간이 전위 예술의 상징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예술가, 음악가, 배우, 시인들로 북적이기 시작합니다.
음악가, 영화 제작자, 작가, 배우, 모델, 퍼포먼스 아티스트들이 모여드는 문화 허브로 자리잡은 ‘팩토리’에선 다양한 파티가 열리고 즉흥 퍼포먼스가 펼쳐졌습니다. 앤디 워홀이 작업 중인 실크그크린 작품들 반대편에선 실험 영화가 촬영되었고, 또 다른 시간엔 뉴욕의 인디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데뷰 앨범 준비가 이루어졌습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 1집 [ 바나나 앨범 ] – 01. 앤디 워홀 & 팝 아트

“팩토리는 단순한 스튜디오가 아니었어요. 그곳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곳이었죠. 예술, 음악, 영화, 패션, 그리고 삶 자체가 하나로 녹아드는 공간이었습니다.” – 빌리 네임 Billy Name (더 팩토리 소속 사진작가)

앤디 워홀- 팩토리 - andy warhol - The Factory

‘팩토리’에서 진행된 다양한 창작 활동

앤디 워홀- 팩토리 - andy warhol - The Factory

 

Art + Star

앤디 워홀은 자신의 예술 프로젝트에 유명 셀럽들을 참여시켰습니다. 워홀의 영화와 퍼포먼스는 대중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과 미학을 담았슴에도, 이디 세지윅 Edie Sedgwick, 재키 커티스 Jackie Curtis, 캔디 달링 Candy Darling 등 인기 있던 셀럽들(Warhol superstars)이 주인공으로 참여하면서 예술대중 사이 새로운 접점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앤디 워홀 - Andy Warhol - 마릴린 스리즈 - Marilyn

마릴린 먼로의 대중 이미지를 활용한 [ 마릴린 ] 시리즈는 팩토리에서 진행된 ‘스타+아트’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팝 아트 – 차용 & 반복 : 앤디 워홀 [ 마릴린 먼로 ]

반면, 앤디 워홀이 스타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스타 이전에 하나의 개인이었던 “셀럽들의 삶을 교묘하게 이용했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앤디 워홀의 뮤즈로 알려진 ‘이디 세지윅 Edie Sedgwick’입니다. 영화 < 팩토리 걸, 2006 >은 그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앤디 워홀 - Andy Warhol - 팩토리 걸 - Factory Girl

 

예술품 ‘생산’ 공장

예술 + 산업 : 실크스크린

실크스크린 silkscreen :
대량생산을 위해 개발된 인쇄 기술로, 동일한 이미지를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산업 기술입니다.
촘촘한 그물망 mesh으로 만들어진 스크린 사이로 잉크를 밀어 넣어서 이미지를 찍어냅니다. 스크린 프린팅 screen printing 이라고도 합니다.

‘The Factory’라는 명칭에는 미술품을 ‘생산’하는 제조 공장의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앤디 워홀의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워홀은 예술을 ‘상품처럼 대량 생산할 수 있다’ 확신했고, 그의 작업실은 공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예술의 ’산업화’를 추구했습니다. 이를 위해 워홀이 선택한 이미지 생산 방식이 ‘실크스크린’입니다.
‘팩토리’는 말 그대로 ‘공장’처럼 작동했고, 방문객들은 곳곳에서 이미지가 복제되는 과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앤디 워홀 - Andy Warhol - 팩토리 - 실크스크린

유일성 < 대중성

전통적인 예술가들은 작품의 가치 증명을 위해 유일함(희소성)과 최고급(고급 재료, 숙련된 기술 등)에 집중했습니다.
반면, 워홀은 실크스크린 기법을 통해 기존 이미지를 기계적으로 복제했고, “복제와 반복이 곧 예술의 가치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발상을 제시했습니다. 워홀은 ‘하나뿐인 오브제(작품=유일한 원본)가 아니어도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유일함 대신 반복과 대량 생산으로 대중의 손쉬운 접근을 추구했습니다.

→ 팝 아트 – 레디메이드 & 반복 : 앤디 워홀 [ 캠벨 수프 캔, 1962 ]

앤디 워홀 - 캠벨 수프 캔_Campbell’s Soup Cans - 1962
앤디 워홀 [ 캠벨 수프 캔, Campbell’s Soup Cans, 1962, 뉴욕 · MoMA 미술관 ]

 

but 산업과 다른점 :
실수를 매력으로

앤디 워홀은 실크스크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완전함, 예를 들어 잉크 번짐이나 어긋난 정렬 등을 의도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이러한 오류들이 ‘작가의 손길’ 대신 ‘우연’이라는 요소로 작품에 녹아들면서, 동일하지만 미묘한 차이를 지닌 ‘앤디 워홀의 스타일’이 만들어 집니다.

앤디 워홀 - 마릴린 딥틱 - Marilyn Diptych - 1962-반복
앤디 워홀 [ 마릴린 딥틱, Marilyn Diptych, 1962, 205×289㎝, 런던ㆍ테이트 모던 ] 부분확대

 

원작자 vs 공동제작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기법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모든 과정을 혼자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워홀은 아이디어, 이미지, 색상 등을 결정했고, 실제 실크스크린 작업은 주로 스태프들이 담당했습니다.

그 외에도 사진촬영, 홍보, 전시 기획 등등 ‘Andy Warhol’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각 분야를 책임진 전문 스태프들의 역량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워홀의 오랜 동료이자 staff으로 함께한 예술가는 제럴드 말랑가 Gerard Malanga, 나단 글럭 Nathan Gluck 등이 있습니다.

앤디 워홀_Andy Warhol - 제라드 말랑가_Gerard Malanga - 팩토리
제라드 말랑가 (Gerard Joseph Malanga, 1943.03.20~ ) : 미국의 시인, 사진작가, 영화 제작자, 배우, 큐레이터

 

‘더 팩토리’ 위치

앤디 워홀의 ‘더 팩토리’는 4차례 위치를 옮겼지만 ‘예술 공장’이라는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앤디 워홀-더 팩토리-Andy Warhol-The Factory-위치

  1. 1963~67 : 이스트 47번가, 231 East 47th Street
  2. 1968~73 : 유니언 스퀘어 웨스트, 33 Union Square West
  3. 1974~84 : 브로드웨이 860, 860 Broadway
  4. 1984~87 : 이스트 33번가, 158 Madison Ave (22 East 33rd Street)

 


바로크 시대의 예술 공장 :
‘루벤스 하우스 Rubenshuis’

앤디 워홀이 ‘팩토리’에서 보여준 ‘대량 생산+협업’ 방식은 오래전 거장들의 대형 ‘아뜰리에 atelier 모습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거장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1640는 거대한 작업실을 운영하며, 여러명의 조수 · 제자 · 동료들과 함께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습니다. 루벤스와 앤디 워홀은 매우 다른 시대와 문화 배경에서 활동한 예술가였지만, 작품 생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공통점을 보여줍니다.

바로크 시대의 예술 공장 : ‘루벤스 하우스’ (작성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