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의 그림, 한 사람의 시선으로 만나는 근대

한국의 예술 · 근대 회화

붉은 꽃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초록 잎과 건물의 지붕이 나타납니다. 나혜석의 〈화령전작약〉을 볼 때는 작가의 삶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보다 이 색들의 만남에서 출발해도 좋습니다. 익숙한 장소가 한 사람의 눈과 손을 거쳐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나혜석·서양화·필치

나혜석(1896~1948)은 한국 근대기에 서양화를 전문적으로 배운 초기 여성 화가입니다. 글과 그림 양쪽에서 활동했습니다. 서양화는 유화 등 서양에서 들어온 재료와 표현을 바탕으로 한 그림을 가리킵니다. 필치는 붓이 지나간 방향과 속도에서 느껴지는 손의 흔적입니다.

대표 그림: 아트코포스트 자체 제작 기사 일러스트

근대의 변화는 ‘누가 그리는가’에도 있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작가 해설에 따르면 나혜석은 1913년 일본의 도쿄 여자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습니다. 여성이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고 화가로 활동하는 길이 넓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새로운 재료를 배우는 일은 새로운 직업과 삶의 가능성을 찾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나혜석은 소설과 잡지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림을 볼 때마다 모든 색과 형태를 작가의 생애에 바로 연결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대상을 골랐고, 화면에서 무엇을 크게 보이게 했는지 먼저 살펴보면 화가로서의 선택이 드러납니다.

〈화령전작약〉에서는 꽃과 건물이 자리를 나눕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화령전작약〉의 제작 시기를 1930년대로 표기합니다. 패널에 유화 물감으로 그린 작품이며 크기는 33.7×24.5cm입니다. 해설에서는 1934년 이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정확한 제작연도가 확인된 것처럼 특정 연도를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화령전은 수원에 있는 정조의 사당입니다. 그림에서는 건물만큼이나 앞쪽의 작약이 눈에 들어옵니다. 장소를 알아볼 수 있는 지붕과 문, 화면을 크게 차지하는 꽃을 번갈아 보세요. 풍경을 이루는 요소들이 모두 같은 비중을 갖지는 않는다는 점이 보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공식 영상,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해설(2021). 나혜석을 비롯한 근현대 작가의 실제 작품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공식 영상 원문

빨강과 초록 사이에서 시선이 움직입니다

꽃과 문에서 보이는 빨간색은 잎의 초록색과 맞닿아 더욱 선명해집니다. 작은 화면 안에서 따뜻한 빛과 차가운 빛이 부딪치는 느낌도 듭니다. 이것은 그림을 보며 느낄 수 있는 감상입니다. 색 하나에 특정한 감정이나 사연이 반드시 들어 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붓질도 함께 보세요. 꽃과 잎은 사진처럼 매끈하게 정리되기보다 빠르게 움직인 붓의 흔적으로 나타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작품의 활달한 필치와 강한 색 대비에 주목합니다. 윤곽이 얼마나 정확한가보다, 선과 색이 화면에 어떤 생기를 주는가를 물으면 감상이 달라집니다.

〈자화상〉, 어두운 바탕에서 얼굴이 드러납니다

나혜석의 자화상, 어두운 옷과 배경 사이로 드러나는 얼굴과 손
나혜석, 〈자화상〉, 제작연도 미상.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공공누리. 원본 보기

꽃의 강한 색을 보았다면 이번에는 얼굴과 배경의 밝기 차이를 살펴보세요. 어두운 옷과 바탕 사이에서 얼굴과 손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윤곽을 힘 있게 잡은 선도 인물의 존재감을 더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작품의 정확한 제작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나혜석의 〈자화상〉으로 널리 소개되지만, 그림 속 인물이 누구인지를 둘러싼 이견도 있습니다. 표정에서 작가의 삶을 곧바로 단정하기보다 화면에 보이는 빛과 선부터 살펴보면 좋습니다. 작품 해설

삶의 이야기를 알되, 그림을 가리지 않게

나혜석을 소개하는 글에는 여성으로 살아가며 겪은 제약과 사회적 논쟁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것은 작가를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입니다. 동시에 그 이야기만 남으면 풍경을 고르고 색을 배치한 화가의 일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작품의 제목을 읽고, 색을 보고, 붓질을 보고, 다시 작가의 삶을 읽는 순서로 오가 보세요. 작품과 생애는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지만 같은 것은 아닙니다. 〈화령전작약〉은 ‘유명한 인물의 그림’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한 사람이 세계를 본 방식을 만나는 출발점이 됩니다.

궁금한 점

이 그림을 정확히 1934년 작품이라고 불러도 되나요?

국립현대미술관의 제작연도 표기는 1930년대입니다. 1934년 이후 제작으로 추정한다는 해설과 확정된 제작연도는 구분해서 읽는 편이 좋습니다.

붓질이 거칠면 덜 완성된 그림인가요?

붓의 흔적을 드러내는 것도 표현의 선택입니다. 꽃과 잎을 세밀하게 구분하는 대신 색과 움직임을 살린 부분을 찾아보세요.

국립현대미술관 작품 해설 보기 →

참고 자료: 국립현대미술관 작품 해설 보기, 공식 작품 해설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