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에 나란히 앉으면 같은 방향을 보게 됩니다. 서로 마주 앉으면 이야기를 시작하기 쉬울 수도 있고, 혼자 쉬고 싶은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디에 어떤 방향으로 앉을 수 있게 하느냐는 작은 선택이지만 공간의 사용 방식을 바꿉니다. 대학생들이 생활 속 디자인을 실제 장소에 놓고 이런 변화를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추진하는 ‘2026 공공디자인 실험실’ 소식입니다. 공진원은 10월 29일 국립공주대·세종대·연세대의 현장 프로젝트를 소개했습니다. 골목의 안내와 쉼터, 대화할 수 있는 벤치, 고령자의 옥상정원이 대상입니다. 보기 좋은 모형을 만드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 이용자가 어떻게 쓰는지 확인한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시선을 마주치는 벤치가 대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세종대 디자인이노베이션학과는 교내 잔디광장에 ‘Free to Face’ 벤치를 설치했습니다. 공식 소개에 따르면 단차를 두고 서로 시선을 맞출 수 있게 설계했으며, 비어 있는 부분은 가방을 놓거나 간이 테이블처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동과 배치도 바꿀 수 있어 여러 사람이 모이는 상황을 고려했습니다. 11월 11일까지 운영하며 현장 관찰과 이용자 조사로 효과를 살펴볼 계획입니다.
이런 디자인은 대화를 강제로 만들어내는 장치라기보다 선택지를 만드는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가까이 이야기할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같은 자리를 둘러앉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만든 사람이 예상한 사용법과 실제 행동이 같은지 살펴보는 일입니다. 가방 놓는 자리로 계획한 부분이 다른 쓰임으로 바뀐다면 그것도 다음 설계의 단서가 됩니다.
대표 사진의 영국 플리머스 원형 벤치는 구조를 비교해보기 위한 실제 자료사진입니다. 국내 실험의 설치물이 아닙니다. 같은 원형이라도 바깥쪽을 향해 앉는 방식이라면 서로의 얼굴보다 주변 풍경을 보게 됩니다. 둥근 모양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 대화를 유도한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앉는 방향과 사람 사이의 거리까지 함께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의자 하나를 볼 때도 머물고 나가는 장면을 생각합니다
벤치를 볼 때는 좌석에 앉은 모습만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다가오는 길과 짐을 놓는 동작, 다시 일어나는 과정도 사용 경험에 포함됩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았을 때 통로가 남는지, 혼자 쓰고 싶은 사람에게 다른 선택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형태가 흥미롭다는 감상과 실제로 편하게 쓰이는지에 관한 질문을 함께 가져가면 좋습니다.

본문의 영국 세인트조지스 광장 사진은 나무 그늘과 피크닉 벤치가 놓인 과거의 공간입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둔 좌석은 물건을 올려두거나 함께 머무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만 이 사진만으로 이용자의 만족도나 실제 대화량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구조에서 예상할 수 있는 행동과 현장에서 관찰해야 알 수 있는 결과를 구분하는 연습에 알맞습니다.
동네에서도 비슷한 관찰을 해볼 수 있습니다. 비슷한 수의 좌석이 있어도 그늘과 햇빛, 길과의 거리, 주변 소음에 따라 사람들이 고르는 자리는 다릅니다. 짧게 쉬는 사람과 오래 머무는 사람의 요구도 다를 수 있습니다. 특정 자리가 비어 있다고 곧바로 실패라고 판단하기보다 언제 누가 어떤 목적으로 쓰는지 시간의 조건을 더해보세요.
공주 골목에서는 걷는 길과 멈추는 자리를 함께 봅니다
국립공주대 리빙디자인센터는 공주 금성동에서 ‘어서오공: 구석구석 반기는 동네’를 진행했습니다. 주민 워크숍에서 찾은 문제를 바탕으로 관광 안내 표지판과 바닥의 길안내 표시, 휴식 공간 등을 보완했습니다. 관광지 사이에 있지만 방문객이 골목 안으로 들어오거나 잠시 머물기 어려웠던 환경을 살펴본 프로젝트입니다.
길을 알려주는 일과 쉬어갈 곳을 만드는 일은 이어져 있습니다. 표지판을 보고 들어온 사람이 다음 방향을 알 수 없거나 잠시 설 자리가 없다면, 경로의 끝까지 편하게 이동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쉬는 자리만 생겨도 그곳에 이르는 길이 분명하지 않으면 쓰임이 줄 수 있습니다. 정보를 읽는 순간과 몸으로 이동하는 순간을 하나의 경험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발표는 공주대가 개선 뒤의 보행과 체류 변화를 조사하고 정책 연계 가능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합니다. 방문객이 늘었다거나 지역 경제가 이미 좋아졌다고 결론 낸 발표는 아닙니다. 디자인을 설치한 사실과 그 효과를 확인하는 단계는 구분해야 합니다. 작은 사업이라도 어떤 변화를 기대했고 무엇을 측정할지 알려주는 과정이 신뢰를 만듭니다.
옥상정원은 가까운 자연과 이웃의 문제를 묶습니다
연세대 주거복지시스템연구단은 도봉구 고령자 전용 공공임대주택 ‘해심당’ 옥상에 정원을 조성했습니다. 평탄한 보행로와 그늘 쉼터를 보강하고 식물 카드와 QR 정보, 식물 체험 등을 연결했습니다. 생활 동선 가까이에서 자연을 접하고 이웃과 교류할 수 있게 하려는 시도입니다. 공간을 꾸미는 일과 그곳을 사용하는 활동을 함께 계획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여기서는 정원의 모습만큼 계속 사용할 조건을 생각하게 됩니다. 누가 식물을 돌보고 어떤 길로 접근하는지, 설명을 읽기 어려운 사람에게 다른 방법이 있는지, 계절이 바뀌어도 머물 수 있는지 질문할 수 있습니다. 식물의 수나 시설의 새로움만으로 고령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를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생활의 조건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해심당의 일반 방문 공개는 11월 1일, 사전 신청 체험은 10월 31일까지로 안내됐으므로 현재 참가할 수 있는 행사처럼 받아들이지는 마세요. 주거 공간의 실험 사례로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벤치와 골목, 옥상정원의 공통점은 새로운 물건을 더했다는 사실보다 실제로 쓰이는 장면을 관찰하고 다음 선택에 반영하려 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동네 디자인을 볼 때 가져갈 네 가지 질문
- 누구의 자리일까: 함께 쓰는 사람과 혼자 쉬려는 사람 모두에게 선택지가 있는지 봅니다.
- 어떻게 움직일까: 다가오는 길·머무는 자리·다시 나가는 동선을 함께 생각합니다.
- 설명대로 쓰일까: 예상한 사용법과 실제 행동이 다른 부분을 찾아봅니다.
- 무엇으로 확인할까: 관찰과 설문 등 효과를 확인할 방법이 제시돼 있는지 읽어봅니다.
궁금한 점
새 벤치를 설치하면 대화가 늘어나는 건가요?
아직 확인해야 할 질문입니다. 세종대는 현장 관찰과 이용자 조사를 통해 효과를 검증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형태의 의도와 실제 결과를 구분해 읽어주세요.
사진이 국내 실험 현장인가요?
두 사진은 좌석의 방향과 주변 환경을 비교하기 위한 영국의 과거 자료사진입니다. 세종대 벤치나 공주 골목, 해심당 옥상을 촬영한 사진이 아닙니다.
옥상정원을 지금 방문할 수 있나요?
공식 발표에서 일반 공개는 11월 1일까지로 안내됐습니다. 현재 방문 프로그램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며 주거 공간의 접근 조건을 임의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좋은 공공디자인은 눈에 띄는 모양 하나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누가 머물고 누가 지나가는지, 의도와 다른 쓰임은 무엇인지 살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음 산책에서 벤치를 만나면 앉는 방향과 길의 관계를 잠깐 살펴보세요. 익숙한 시설 하나가 사람의 행동을 배려하는 디자인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자료: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2026년 10월 29일 발표. 대표 사진: Jaggery, 영국 플리머스 피닉스 스트리트 원형 벤치(2018). 사진 원본 · 사진 이용조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