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초월한 표정들, 경주 황오동 토우에 담긴 신라인의 일상과 감정
한반도 고대사에서 신라는 역동적인 문화와 예술이 만개한 왕국으로 손꼽힙니다.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과 디지털 기술로 다양한 예술 작품을 어디서든 감상할 수 있지만, 천오백 년 전의 고대인들은 흙을 직접 빚어 자신들의 생활과 정서를 “토우(土偶)”라는 작은 조각으로 표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토우들을 다시금 들여다보면 그저 소박한 미소만 띠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인의 주름진 표정부터 악기를 연주하는 이의 환한 웃음, 출산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드러낸 모습, 거기다 남녀 간의 노골적인 사랑행위까지, 무척이나 다채로운 감정의 흐름을 섬세하게 담아냈습니다.
특히 경주 황오동 일대의 고분에서 출토된 토우들은 “표정 연기”에 관한 생생한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내부 구조가 훼손되거나 발굴 기록이 미미해 이들의 예술적 의의가 뚜렷하게 정리되지 못했지만, 최근 조사와 연구로 인해 당시 사람들의 감정 표현과 예술적 자유분방함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과연 5~6세기경 신라인들은 어떤 시각과 생각을 토우에 투영했을까요? 그리고 오늘날 이러한 토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경주 황오동 토우가 보여주는 다채로운 표정의 비밀을 알아보면, 신라인들이 남긴 생활철학과 예술성이 얼마나 깊이 있는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고대 신라의 미학, 황오동 유적에서 깨어나다
경주 황오동은 과거부터 신라의 핵심 왕경(王京) 지역과 가깝고, 무수히 많은 고분이 즐비해 고고학적으로도 가치가 매우 높은 지역입니다. 발굴 조사는 군데군데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토우장식토기”라 불리는 항아리나 굽다리접시 뚜껑 등에 붙은 인물·동물 모양의 토우들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초창기 발견 당시에는 토우가 무덤의 부장품으로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그리고 왜 이렇게 사실적인 표정 표현이 가능했는지에 대해 여러 가설이 제시되었지만, 문헌 자료 부족과 발굴 방식의 미흡함으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기, 경주 일대에서 이루어진 발굴에서는 적석목곽분 내부에서 토우가 다수 발견되어 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전까지는 토우라는 존재가 주로 문화·민속적 요소에 국한되리라는 막연한 추정이 있었기에, 고분 부장품으로서의 의미와 예술적 가치가 크다는 사실이 새롭게 부각된 것입니다.
이후 20세기 중반과 후반에 걸쳐 추가 발굴이 계속 진행되면서, 토우가 다양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 같은 토우부터, 수염이 길게 표현된 노인의 토우, 악기를 연주하는 토우에 이르기까지, 마치 오늘날의 인물 조각품을 방불케 하는 생동감을 품고 있지요.
당시 시대적 배경과 토우의 활용
5~6세기는 신라가 아직 삼국 통일을 완수하기 전, 주변국과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대규모 왕릉과 고분이 속속 조성되던 전성기로,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에 큰 사회적 격차도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적석목곽분이나 석곽묘 등 무덤 양식이 다양해진 것은 이러한 경제력과 문화 융합이 한창 활발했던 상황을 반영합니다. 발굴된 토우 중에는 신분이나 역할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디테일이 표현된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 토우나 커다란 짐을 머리에 인 인물 토우 등 우리에게 낯익지만 동시에 이질적인 모습들이죠.
이러한 토우가 실용적인 의미만을 지닌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무덤에 함께 매납된다는 점에서, 죽은 이에게 현세와 비슷한 삶을 이어주려는 혹은 사후 세계를 안정적으로 누리게 해주려는 염원이 담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무뚝뚝한 조형물이 아니라, 웃음과 슬픔, 염원과 기원 같은 여러 감정이 분명히 연출되어 있다는 점이 미학적·예술적 관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곧, 신라인들은 토우를 통해 삶의 다양한 장면을 고스란히 옮겨놓음으로써 사후 세계마저 풍요롭길 바랐던 것이 아닐까 하는 가설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도발적인 표현, 그리고 해학적 요소
황오동 출토 토우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 중 하나는 여성의 임신이나 출산 과정을 대담하게 묘사한 것이며, 남성의 성기를 과장되게 표현한 예도 있습니다. 이처럼 고대인들이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될 부분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은, 성(性)을 풍요와 번영의 상징으로 여기는 고대적 인식이 토우에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춤을 추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 토우에서는 얼굴 가득 흥에 겨운 표정이 나타나는데, 이를 통해 단순한 종교적 경건함이 아니라 해학과 흥겨움을 삶 속에서 적극적으로 즐겨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단지 “야하다”거나 “파격적이다”라는 현재적 시각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경험하는 탄생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노동과 여가, 기쁨과 슬픔 등 광범위한 감정을 솔직하고 단순한 조형 언어로 담아냈다는 점이 신라 토우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특히 세부 묘사가 정교하지 않아도, 말 그대로 몇 가닥 선이나 구멍을 이용해도 보는 이가 금방 그 표정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솜씨가 뛰어납니다. 이는 신라인들의 예술적 감수성이 그만큼 자유롭고 풍부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경주 황오동 ‘표정 연기’ 토우의 특징
경주 황오동에서 출토된 토우들의 기법을 살펴보면, 흙을 빚은 뒤 납작하게 잇거나 토기 몸체에 붙이는 부착 형식이 자주 보이는 반면, 독립된 조각품 형태로 만든 ‘단독형 토우’도 발견됩니다. 부착형 토우는 항아리의 어깨나 뚜껑, 굽다리접시(고배)의 윗부분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두 점 이상이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구성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토우끼리 짝을 이루는 배치는 부활, 다산, 풍요, 재생 등을 상징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많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표정 면에서 보면, 노인이나 젊은이, 남자와 여자 구분 없이 모두 현실감이 물씬 묻어나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특유의 단순화된 눈과 입”입니다. 심지어 어떤 토우들은 눈과 입이 점 하나씩으로만 이루어지는데도, 살짝 비틀린 얼굴 윤곽 덕에 짓궂거나 슬픈 분위기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법은 현대적인 미학으로 본다면 일종의 “미니멀리즘”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으며, 적은 선으로도 감정을 극대화하는 신라인들의 사실적이면서도 익살스러운 방식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과거 기록 속 현장감과 현재의 보존 활동
1920~1930년대 황오동 일대에서 간헐적으로 이루어진 발굴에서는 미흡한 상황 속에서도 시민들이 우연히 토우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토우들은 현장 보존이 어려워 발굴 당시 바로 뜯겨져 수집됐는데, 이 때문에 원래 항아리나 뚜껑에 어떤 식으로 배치되어 있었는지 명확하게 복원하기가 어려운 사례도 많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몇몇 토우가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전시되고 있어, 관람객들은 당시 신라인들이 남긴 ’표정 연기‘를 직접 접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경주 일대 박물관과 전시관에서는 이런 토우들을 일반인에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발굴된 토우는 물론,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재현품까지 함께 진열하여, 신라인들의 감수성과 일상 모습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나아가 전문 연구를 위한 자료 수집과 보존 작업, 다양한 학술포럼 등을 통해 고대 토우가 지닌 역사·문화적 의의를 한층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지요.
감정과 예술의 결합: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다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곡선과, 솔직담백한 표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신라 토우가 현대인에게 주는 특별한 인상 중 하나입니다. 이를 “공감 예술”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거창하고 화려한 형식 대신 삶 속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그 자체로 표현해, 작품을 보는 사람이 무심결에 미소를 짓거나 마음 속 깊은 감정에 공감을 일으키게 만드는 힘이지요.
고대 신라의 토우 작업이 장인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창작되고 전승되었는지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불교적 의례, 무속 신앙, 내세 신앙이 혼합되어 다양한 모티프가 함께 활용된 것이라는 의견도 있고, 왕경 문화를 중심으로 여러 계층이 공유하는 미적 감각이 촉발한 결과라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이유로든 이 작은 흙 인형들이 단지 무덤 부장품 이상의 의미를 획득했으며, 천 오백 년이라는 시간의 벽을 넘어 오늘날에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는 사실입니다.
현대에서 만나는 신라 토우, 그 감동의 순간
경주 지역을 여행하면서, 토우가 전시된 박물관이나 전시관에 들르면 생각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표정을 마주하게 됩니다. 단순히 “옛날 유물”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표정에 담긴 감정을 공감하며 고대 신라인들의 삶을 상상해볼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것입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토우의 표정을 고분에 묻힐 주인공 혹은 그 주변 인물들의 실제 모습을 본뜬 것으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가령, 출산을 앞둔 여인 토우는 풍요와 기원의 의미를 담았으나, 동시에 누군가의 생생한 체험을 반영했을 수도 있죠.
무척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예술 형식이 당시 신라 왕실이나 귀족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폭넓은 사회적 계층에게도 퍼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상당히 유의미하며, 예술적 감수성이 왕족이나 고급 장인 집단에만 국한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감상자들은 경주 황오동 고분에서 출토된 이런 작은 토우 앞에 서서, “이건 꼭 내 옆집 할머니 같아” 혹은 “피곤해 보이는 저 표정, 나랑 똑같네” 같은 친근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토우와 현대 예술의 만남, 그리고 관광 시너지
최근에는 토우를 활용한 문화콘텐츠나 기념품 상품화가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개성을 담아 직접 토우를 빚어보는 체험 프로그램이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기도 하고, 토우 모양을 본뜬 소품이나 액세서리가 지역 특산품으로 판매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고대 유물을 박물관 진열장 속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살아 있는 지역 문화의 일부로 재탄생시키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전시 기획자나 예술가들도 신라 토우를 모티프로 삼아 현대미술 작업을 이어나가곤 합니다. 순수 회화나 조각은 물론이고, 디지털 아트나 미디어 파사드 등의 영역에서도 토우의 익살맞고 친근한 표정이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경주의 역사유산이 고루한 ‘유물’의 범주를 넘어 동시대 문화와 소통하는 장을 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관람 팁: 황오동 토우와 함께 걷는 시간 여행
황오동 일대의 고분군이나 유적지는 경주 시내에서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편입니다. 근래에는 도심 재생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어, 지역 주민과 함께 숨쉬는 문화 장소로 거듭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도보 여행 코스나 자전거 여행 코스가 잘 마련되어 있어, 왕경 일대와 주요 박물관을 연계하여 한나절 코스로 즐길 수 있습니다.
만약 박물관에서 황오동 토우를 직접 마주하게 된다면, 먼저 인물 토우의 표정부터 살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과장된 코나 입 모양, 흐느적거리듯 구부러진 팔다리, 무릎을 꿇고 있는 자세 등에서 순간적으로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세요.
“왜 이 모습을 표현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동시에, 토우 속 이야기에 스스로를 겹쳐보면 어느새 천오백 년 전 신라인의 삶 한가운데로 타임슬립한 듯한 재미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옛사람들이 빚어낸 감정의 기록
경주 황오동에서 출토된 신라 토우들은 예술가의 장인 정신이나 미적 완성도 이상의 가치를 전해줍니다. 그것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고스란히 담은 “표정의 기록”이자, 죽음과 삶, 노동과 기쁨, 외로움과 희망 같은 모든 감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일종의 타임캡슐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토우는 단순한 박물관 전시품을 넘어, 사람들의 삶과 역사, 그리고 그 너머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습니다.
만약 경주를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황오동 토우가 지닌 깊은 표정과 이야기를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미소 짓는 토우, 시무룩해 보이는 토우, 춤추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토우를 차례로 감상하다 보면,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공감대가 느껴집니다. 그들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결코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감정들이 “예술”이라는 언어로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줄 뿐이지요.
작은 몸집에 거칠게 빚은 흙 한 덩어리, 그 속에 담긴 고대인들의 웃음과 눈물은 우리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자극해 새로운 예술의 영감을 선사합니다. 경주 황오동에서 발견된 토우들은 이처럼 우리에게 “표정 연기” 이상의 진솔한 인간극을 펼쳐 보이고 있으며, 그 미소와 눈빛에는 고대 신라의 혼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유물들과 함께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고대인들의 희로애락을 하나하나 음미해보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