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의 신화적 변환을 만나는 시간,
화이트 큐브 서울 ‘깃털로 만든 여인’
Maid in Feathers
펠리컨이 된 어머니 – 여성 예술가가 보여주는 모성의 또 다른 얼굴
흰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아이를 돌본다. 그런데 잠깐, 화면이 반으로 나뉘면서 그 여인이 검은 부리를 가진 펠리컨으로 변한다. 모성은 따뜻한 품만이 아니다. 피로와 사랑, 헌신과 욕망이 뒤엉킨 복합체다. 프랑스 작가 줄리 커티스가 그려낸 ‘깃털로 만든 여인’은 우리가 아는 모성의 이야기를 완전히 뒤집어놓는다.
누가 이 전시를 놓쳐서는 안 될까?
이 전시는 무엇보다 MZ세대 여성 관객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순한 예술 전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성에 대한 고정된 관념을 해체하고, 현대 여성의 심리적 복잡함을 초현실적 이미지로 풀어내는 동시대 페미니스트 미술의 정점을 보는 경험이다.
게다가 인스타그래머블한 포토제닉 작품들이 가득해서 SNS에 공유하고 싶은 충동이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난다. 강남 한복판 도산대로에 위치한 화이트 큐브 서울은 관람 후 주변의 트렌디한 카페나 상점을 둘러보기에도 딱 좋다. 연인과의 문화 데이트, 친구들과의 전시 여행, 혼자만의 명상적 시간까지 모두 담을 수 있는 공간이다.
📅 전시 기본정보
전시명: Maid in Feathers (깃털로 만든 여인)
기간: 2025년 11월 5일 ~ 2026년 1월 10일
장소: White Cube Seoul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45길 6)
관람료: 무료
운영시간: 화~토 10:00 ~ 18:00 (일·월 휴관)
문의: +82 (0)2 6438 9093
초현실주의와 팝아트의 경계에서 여성을 그리다
줄리 커티스는 1982년 파리에서 태어나 현재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다.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교육받았고, 런던 메이슨스 야드, 홍콩 화이트 큐브, 뉴욕 안톤 컨 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퐁피두센터와 리움미술관 같은 국제적 미술관에도 참여해왔다.
그의 작업은 초현실주의와 팝아트의 경계를 넘나들며 여성의 정체성, 욕망, 시선, 그리고 사회적 역할을 탐구해왔다. 머리, 손, 음식, 신체 일부 같은 일상의 오브제들이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그것들은 기괴하게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유머와 어둠, 기이함과 일상, 기괴한 형상과 선명한 색채의 상보성을 추구하는 커티스의 미학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당혹하게 하기도, 웃음 짓게 하기도, 그리고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전시 제목 ‘깃털로 만든 여인’이 담은 의미
제목만 봐서는 뭔가 몽환적이고 우아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커티스는 이 전시를 통해 엄마가 된 이후 겪은 심리적 변환, 즉 자신의 몸과 정체성의 변형을 직면하라고 말한다. ‘깃털로 만든 여인’은 그녀가 그 변화 속에서 발견한 자신의 형상이다.
가사와 돌봄, 재생산 노동에 얽힌 여성의 역할과 정체성 문제를 초현실적 이미지로 전환하면서도, 유머와 상상력으로 그 무게를 경쾌하게 비틀어낸다. 이는 단순히 ‘엄마는 힘들다’는 식의 통속적 고백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 ‘재생’, ‘존재의 전환’이라는 더욱 근원적인 테마를 다루고 있다.
펠리컨: 신화 속 상징에서 현대적 불안으로
이 전시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모티프는 펠리컨이다. 펠리컨이 왜 모성의 상징일까? 그 이유는 오래도록 전해 내려온 기독교 도상학에 있다.
📚 기독교 도상학에서의 펠리컨
중세 기독교 전통에서는 어미 펠리컨이 자신의 가슴을 쪼아 피를 흘려 죽어가는 새끼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러한 자기희생 이미지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피를 흘린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대시인 단테 역시 ‘신곡’ 천국편에서 ‘인간을 위해 피를 흘린 예수는 펠리컨’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하지만 커티스의 펠리컨은 이러한 전통적 상징에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기독교 도상학의 펠리컨에 연금술의 상징성을 겹친다. 연금술에서 펠리컨은 물질의 변형과 영혼의 순환을 의미하며, 칼 융의 정신분석에서는 내적·외적 힘이 끊임없이 맞물려 작용하는 순환적 과정을 의미한다. 특히 융은 이를 ‘순환적 증류(circular distillation), 이름하여 펠리컨’이라고 표현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커티스가 전통적인 펠리컨 이미지에 넓적부리황새 이미지를 중첩시킨다는 점이다. 넓적부리황새는 포식자의 본능을 지닌 새로, 펠리컨과 결합되면서 뭔가 불온한 장난기와 악마적 기운까지 풍기게 된다. 모성애를 표상하면서도 기괴한 형상을 한 이 혼종의 새는 작가의 집을 점령하고 불안과 긴장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 대표작 ‘두 요람(Cradles, 2025)’ 읽기
이 작품은 이면화(diptych)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쪽 면에는 흰 드레스를 입은 두 여성이 검은 유모차 안의 아이를 돌보고 있다. 부드럽고 따뜻해 보이는 일상의 장면이다. 그런데 대칭되는 반대 면에는 그 자리를 대신하듯 검은 부리를 지닌 두 마리의 펠리컨이 서 있다. 모성의 몸이 신화적 존재로 탈바꿈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줄리 커티스 “깃털 달린 하녀” 전시 상세정보 보기 →
일상 속 신화적 상징들: 달걀, 유모차, 그리고 젖가슴
커티스의 화폭에는 달걀, 공갈젖꼭지, 유모차, 거품기 같은 사소한 사물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모성, 양육, 재생을 상징하는 오브제들이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걸리면 이들은 더 이상 순진한 의미만을 지니지 않는다.
달걀 – 생명과 욕망의 모순
‘외프 알 라 코크(Oeuf à la Coque, 2025)’는 아침 식탁 위의 달걀 요리 이미지로 시작한다. 평범한 가정생활의 일면이다. 그런데 이내 눈에 띄는 미끈한 손과 매니큐어된 손톱이 화면을 지배한다. 일순간 분위기가 에로틱하게 전환된다. 이 작품은 가사 노동의 여성화, 그리고 돌봄 속에 숨겨진 욕망의 문제를 한 화면에 농축시킨다.
거품기 – 돌봄, 봉사, 에로티시즘의 교차
‘거품기를 든 여자(Woman with a Whisk, 2025)’에서 한 여인은 풀린 수유용 브래지어 사이로 한쪽 가슴을 드러낸 채 거품기로 달걀을 휘젓는다. 이 장면은 불편하고, 기괴하고, 어쩐지 도발적이다. 일상적인 가사 노동과 여성의 신체, 그리고 사회적 시선 아래 놓인 여성의 정체성이 모두 한 프레임에 응축되어 있다.
유모차 – 보이지 않는 것들
‘아기 요람(Bassinet, 2024)’은 종이 위의 단색조 과슈 작업이다. 유아용 침대를 덮은 천이 여린 바람에 나부낀다. 그 안에 잠들어 있는 아이는 우리의 시야에서 가려져 있다. 커티스는 미국의 심리학자 도널드 위니콧의 ‘전이적 공간(transitional space)’ 개념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이는 내면 세계와 외적 현실이 만나는 곳이자 유아가 정신적 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을 뜻한다. 보이지 않는 것, 감춰진 것,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모성의 경험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이 작품은 섬세하게 드러낸다.
이 전시를 보며 질문해야 할 것들
💭 자문해 볼 질문들
1. 왜 여전히 모성은 ‘희생’이라는 단어로만 기술되는가?
2. 여성의 몸은 엄마가 되면서 누구의 것이 되는가?
3. 일상의 돌봄 노동은 왜 예술적 주제로 간주되지 않아왔는가?
4. 모성의 불안과 욕망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울까?
5. 이 전시를 통해 우리는 여성의 정체성과 사회적 기대 사이의 간극을 다시 한 번 직면하게 된다.
현대 미술 속 페미니즘 담론, 그리고 아시아에서의 성장
줄리 커티스의 이 전시는 한국 미술계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2018년 개관한 화이트 큐브 서울은 아시아 미술 시장에서 국제적 갤러리가 직접 운영하는 공간으로서 서울의 위상을 높였다. 커티스가 한국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은 단순히 ‘유명한 작가가 왔다’는 것 이상의 의미다.
현대 미술의 여성주의 담론은 1990년대 한국에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여성, 그 다름과 힘’ 같은 전시들이 여성 작가의 정체성과 미학을 조명했고, 2000년대에는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콜렉티브들이 사회운동과 미술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리고 지금 2025년, 줄리 커티스가 제시하는 초현실적 이미지들은 이러한 역사 위에서 새로운 층위의 질문을 던진다.
🌍 전시가 열리는 의미
화이트 큐브는 런던, 홍콩에 이어 서울을 세 번째 아시아 거점으로 삼았다. 서울 강남의 도산대로에 위치한 이 갤러리는 국제적 미술 트렌드와 한국 관객을 연결하는 문화 교류의 장이다. 커티스의 전시는 여성성, 모성, 초현실주의라는 21세기의 화두들이 동시대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생생한 질문이 되고 있는지를 증명한다.
전시 감상 팁: 어떻게 즐길 것인가
작품의 매체에 주목하라
커티스의 작품들은 유화, 아크릴, 과슈, 자연 옻을 사용한 조각 등 다양한 매체로 구성되어 있다. 화면의 밝은 색감과 어두운 톤의 대비, 그리고 질감의 차이가 모성의 복합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 주목해보자. 예를 들어, 밝은 분홍색이나 노란색 위에 검은 드로잉 선이 얹혀지는 순간, 얼마나 쉽게 분위기가 전환되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면화(Diptych) 구조를 읽다
여러 작품이 좌우 두 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쪽은 현실, 다른 쪽은 무의식 또는 신화적 변환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 구조 자체가 모성 경험의 이중성을 시각화하고 있음을 깨달아보자. ‘두 요람’ 같은 작품을 앞에서, 옆에서,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며 한쪽 면에서 다른 쪽 면으로의 ‘되어감’의 과정을 신체로 따라가보는 것도 좋은 관람 방식이다.
색채 언어에 귀를 기울여라
커티스의 작품에서 색채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선명하고 밝은 색상들은 일상과 생명을 상징하고, 검은색이나 회색은 불안, 그림자, 무의식을 나타낸다. 분홍색은 여성성을, 파란색은 깊이를 암시한다. 각 색채가 어떻게 다른 색과 만나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지 추적해보면, 작품이 훨씬 풍부하게 읽힐 것이다.
📸 인스타그래머블 작품들
‘두 요람’, ‘밤의 방문자’, ‘거품기를 든 여자’ 같은 작품들은 특히 인생샷을 남기기에 좋다. 하지만 사진 찍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잠시 멈춰 그 작품 앞에 서서 감정이 무엇인지 느껴보자. 소셜 미디어 공유도 좋지만, 전시의 본질인 ‘관계’와 ‘성찰’을 놓치지 않기를.
줄리 커티스

강남에서 즐기는 미술 여행: 도산대로의 문화 생태계
화이트 큐브 서울은 단순히 하나의 갤러리가 아니라, 강남 도산대로 일대의 문화 생태계의 중심축이다. 도산공원, 호림박물관, 한송문화재단 등 여러 문화 기관들이 이 지역에 위치해 있다.
전시를 본 후 근처의 갤러리들을 돌아보는 것도 좋다. 도산대로 일대에는 페로탕(Perrotin), 오페라 갤러리(Opera Gallery),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갤러리들이 모여 있어 한 번에 여러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관람을 마친 후 근처의 카페에서 느슨한 시간을 가지며 관람 경험을 여운 속에 담아두기를 권한다.
당신이 알아야 할 Q&A
Q. 줄리 커티스의 작품은 어떤 시각에서 봐야 할까요?
A. 커티스의 작품은 초현실주의의 전통을 따르지만, 현대의 여성적 경험을 중심으로 재해석합니다. 20세기 초 슈르실리즘이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했다면, 커티스는 현대 여성의 정체성과 모성이라는 구체적 경험 속의 무의식을 그려냅니다. 어두운 심리학 없이, 유머와 감정을 함께 지닌 작품으로 접근하시면 좋습니다.
Q. 이 전시는 아이를 키워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나요?
A.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전시의 주제는 모성이지만, 이것은 모든 사람이 누군가를 돌본 경험, 또는 돌봐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와 실제 욕망 사이의 갈등에 대한 보편적 질문입니다. 성별, 나이, 생활 경험을 막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의 심리적 복잡함을 다루고 있습니다.
Q. 왜 펠리컨이 모성의 상징인가요?
A. 기독교 도상학에서 펠리컨은 자신의 가슴을 쪼아 피를 흘려 새끼에게 새 생명을 주는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이미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을 상징하게 되었고, 따라서 모성, 희생, 부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커티스는 여기에 더 많은 층위를 더하며, 펠리컨을 모성의 신화성뿐만 아니라 불안, 본능, 어둠까지 포함하는 존재로 재해석합니다.
Q. 전시 기간이 어떻게 되나요? 언제 가야 하나요?
A. 2025년 11월 5일부터 2026년 1월 10일까지 진행됩니다. 운영시간은 화요일~토요일 10:00~18:00이며,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크리스마스 연휴나 새해 연휴에 조정이 있을 수 있으니, 방문 전 공식 웹사이트를 확인하거나 전화(+82 (0)2 6438 9093)로 문의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Q. 입장료가 있나요?
A. 완전히 무료입니다! 화이트 큐브 서울의 모든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비용 걱정 없이 현대미술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더 알고 싶다면
🔗 도움이 되는 웹사이트와 자료
▸ 화이트 큐브 공식 웹사이트 (whitecube.com)
전시 일정, 작가 정보, 아티스트 토크 등 전시 관련 모든 정보를 제공합니다. 온라인 전시 카탈로그도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 네이버 미술 (art.naver.com)
한국 미술계의 전시 정보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합니다. 줄리 커티스 전시뿐 아니라 서울 지역의 다양한 전시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갤러리 위치, 관람시간, 예약 정보도 상세히 제공됩니다.
▸ 아르코 미술관 (arko.or.kr)
한국 미술의 역사와 페미니스트 미술 운동에 대한 자료를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1990년대 한국 여성미술 운동에 대한 아카이브가 유용합니다.
▸ 리움미술관 (leeum.org)
국제적 현대미술 수집과 전시를 기반으로 한국과 세계의 미술 동향을 소개합니다. 페미니스트 미술에 관한 심화 자료도 찾을 수 있습니다.
▸ 이미지 검색 – 줄리 커티스 작품
구글 이미지나 Artsy 등에서 커티스의 과거 전시 작품들을 미리 보면 이번 전시를 더 깊이 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작가의 작품 진화 과정을 추적하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입니다.
📍 화이트 큐브 서울 방문하기
주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45길 6 (신사동)
전화: +82 (0)2 6438 9093
지하철: 신분당선 강남역 6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또는 2호선 강남역 5번 출구에서 도보 12분
자동차: 도산공원 근처 유료주차장 이용
근처 명소: 도산공원, 압구정 로데오, 신사 가로수길, 강남 카페 문화 거리
모성은 더 이상 온정주의로 포장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과 불안, 헌신과 자기기만이 뒤엉킨 현대 여성의 실존적 경험이다. 줄리 커티스의 ‘깃털로 만든 여인’을 만날 때, 우리는 그 모든 것의 복잡함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마주침 자체가 이미 변화의 첫걸음이 아닐까. 이번 겨울과 초봄, 강남의 화이트 큐브 서울로 발걸음을 옮겨보길 권한다. 펠리컨이 된 어머니를 만나는 경험은 당신의 미술 관람 역사에 분명 새로운 장을 열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