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의 글씨 앞에 서면 ‘명필’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릅니다. 획이 힘차고 구성이 낯설어 어디부터 보아야 할지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추사 김정희와 그의 동반자》에서는 글씨의 모양 곁에 사람의 관계를 놓아보세요. 가족에게 보낸 편지와 친구들과의 공부, 예술가와 승려에게 건넨 마음을 따라가는 전시입니다.
전시는 2026년 11월 22일까지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 202-1호에서 열립니다. 31건 38점으로 김정희의 삶과 교유를 살핍니다. 한 사람의 대표작만 모아 보는 방식보다, 글을 주고받은 상대를 떠올리며 읽을 때 전시의 흐름이 선명해집니다.
첫 번째 방에서는 잘 쓴 글씨보다 편지의 상대를 찾아보세요
전시는 가족과 벗, 제자에게 보낸 다섯 편의 편지로 일상의 추사를 소개합니다. 그중 1819년 황해도 무관에게 보낸 편지는 아버지의 승진과 자신의 과거 급제라는 일을 전합니다. 큰 사건을 적은 기록에서도 상대에게 무엇을 먼저 알리고 싶었는지 생각하면 글쓴이가 조금 가깝게 느껴집니다.
편지를 볼 때는 수신인과 쓰인 때를 먼저 확인해보세요. 그런 다음 내용 풀이에서 안부나 부탁, 기쁜 일을 전하는 대목을 하나 고릅니다. 글씨의 굵기와 줄 간격을 보는 일은 그다음이어도 좋습니다. 한문을 모두 읽지 못해도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전하려 했는지는 전시 설명을 통해 따라갈 수 있습니다.
같은 사람의 글이라도 공식적인 글과 가까운 이에게 보낸 편지는 다르게 다가옵니다. 다만 빠른 획만 보고 다급한 성격이었다고 판단하는 식으로 연결하지는 마세요. 문장의 내용과 상대, 작성 상황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모양에서 받은 첫 느낌이 설명을 읽은 뒤 어떻게 바뀌는지 비교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돌에 새긴 글을 함께 읽었던 친구들
두 번째 흐름은 금석학입니다. 김정희는 김경연, 조인영 등과 옛 비문을 연구하며 역사를 살폈습니다. 돌에 새긴 글은 단순히 따라 쓸 서체 견본이 아니라 과거를 확인할 근거이기도 했습니다. 전시는 이런 공부가 친구들과 자료를 주고받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김정희와 권돈인의 서로 다른 필적으로 전하는 ‘석노시’도 이런 관계를 생각하며 볼 수 있습니다. 같은 글이 사람의 손을 거치며 어떤 모습으로 달라졌는지, 기록을 함께 즐기고 나누는 일이 어떤 의미였는지 살펴보세요. 한 가지 정답을 찾기보다 글과 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찾는 방식입니다.
비문을 종이에 옮긴 탁본(새긴 글의 모양을 먹으로 떠낸 자료)을 만나면 원래의 돌과 종이 위의 글을 함께 떠올려보세요. 읽을 거리를 모으고 비교할 수 있게 되면서 연구의 범위도 넓어집니다. 지금 우리가 책의 사진과 원문을 비교하는 것처럼, 옛 연구자도 자료의 모습을 곁에 두고 생각했습니다.
청나라 문인과 제자에게 이어지는 예술의 관계
세 번째 흐름에서는 청나라 문인들과의 교류, 허련과 이하응에게 이어지는 예술적 관계를 만납니다. 전시가 소개하는 《가을나무와 흰 구름》과 《번상촌장에게 증정한 난초》 같은 작품은 그림과 글이 누군가에게 건네는 선물이자 대화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새롭게 공개하는 자료에도 눈길이 갑니다. 박물관은 《석노시첩》과 《기유십육도시첩》을 처음 전시한다고 밝혔습니다. 2023년 수집한 《소동파 입극도》도 처음 선보입니다. 이 작품에는 주학년이 그린 인물과 여러 문인의 글이 함께 있어, 한 화면이 여러 사람의 참여를 통해 풍부해지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감상할 때는 그림이 있는 부분과 글이 있는 부분을 번갈아 보세요. 글이 화면의 어느 곳을 차지하는지, 그림과 어떤 간격을 두는지 관찰해도 좋습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는 즐거움과 화면의 구성을 보는 즐거움이 나란히 있습니다. 서로 다른 손길이 남은 작품일수록 이름과 필자의 관계를 확인하면 도움이 됩니다.
초의에게 보낸 편지에서 만나는 생활의 목소리

마지막 흐름은 초의·해붕·백파 등 승려들과의 관계입니다. 본문 이미지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추사 김정희 선생이 초의선사에게 보낸 편지 모음》의 참고 도판입니다. 이번 전시의 출품 장면을 촬영한 사진은 아닙니다. 박물관의 소장품 해설에 따르면 편지에는 제주 유배 생활의 어려움과 차를 보내달라는 부탁 등 일상의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안부와 부탁을 전하는 모습은 거장의 이름 뒤에 가려진 생활을 떠올리게 합니다. 동시에 불교에 관한 논의도 담겨 있어, 두 사람의 관계가 일상적인 친분과 지적인 대화를 함께 품었음을 보여줍니다. 전시의 불교 관련 작품도 이런 교류의 맥락에서 만나보면 좋습니다.
대표 이미지로 소개한 《묵소거사 자찬》 역시 글씨 감상을 돕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참고 작품입니다. 친구 김유근과의 관계를 전하는 인장이 작품 주변에 남아 있습니다. 대표·본문의 참고 도판을 이번 전시의 실제 진열 목록과 동일하게 보지는 마세요. 현장 출품작과 교체 여부는 전시 안내를 기준으로 확인하면 됩니다.
11월에 방문한다면 작품 교체부터 확인하세요
- 종료일: 2026년 11월 22일. 장소는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 202-1호입니다.
- 교체 작품: 《불이선란도》의 공개는 9월 13일 끝났습니다. 이후에는 《함추각 행서대련》이 그 자리를 잇습니다.
- 관람 시간: 월·화·목·금·일요일 09:30~17:30, 수·토요일 09:30~21:00. 입장 마감은 각각 17:00, 20:30입니다.
- 관람료: 상설전시관은 무료입니다. 임시 휴실이나 당일 변경 공지는 방문 전에 확인하세요.
궁금한 점
서예를 처음 보는데 무엇부터 보면 좋을까요?
편지의 상대나 작품을 받은 사람부터 찾아보세요. 관계를 이해한 다음 글씨의 굵기, 줄 간격, 여백을 보면 한결 편하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11월에도 불이선란도를 볼 수 있나요?
이번 전시에서 불이선란도의 공개 기간은 8월 11일~9월 13일이었습니다. 11월에는 교체 작품인 함추각 행서대련을 기준으로 관람 계획을 세우세요.
전시를 다 본 뒤에는 가장 기억에 남은 사람 한 명을 골라보세요. 편지를 받은 가족일 수도, 공부를 나눈 친구나 차를 주고받은 승려일 수도 있습니다. 글씨를 남긴 사람만 바라보던 시선이 그 글을 받은 사람에게 옮겨갈 때, 추사의 작품도 조금 다른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자료: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보도자료 · 관람 안내. 대표·본문 참고 도판: 묵소거사 자찬 · 초의선사에게 보낸 편지 모음 · 사진 이용조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