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고산리 유적, 가장 이른 토기에서 만나는 만들기의 시작

작은 흙 조각과 날카롭게 다듬은 돌. 화려한 색이나 금빛 장식은 없지만, 재료를 고르고 모양을 만들어 쓰던 사람의 손길이 남아 있습니다. ‘한국의 예술’의 첫 이야기는 제주 서쪽 고산리 유적에서 시작합니다. 예술과 생활 도구를 엄격히 나누기 이전, 만들기의 감각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한국의 예술 | 선사시대부터 읽기

① 제주 고산리: 이른 토기와 석기
② 고성 문암리: 몸을 꾸민 옥 귀걸이
③ 울주 반구대: 바위에 새긴 동물

지역과 표현을 따라 읽는 순서입니다. 신석기 유적의 사용 시기는 서로 겹치며, 세 지역이 차례로 문화를 전해 주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구석기와 신석기 사이, 한순간에 바뀌지 않은 생활

제주 고산리 유적은 제주시 한경면 수월봉 부근의 해안 대지에 있습니다. 국가유산포털은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초기신석기시대에 걸친 유적으로 분류합니다. 흔히 약 1만 년 전의 삶을 보여주는 곳으로 소개되지만, 유적 전체가 단 한 해에 만들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곳에서는 오래된 석기 제작 전통과 이른 토기가 함께 확인됩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도 고산리를 두 시대의 전환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례로 설명합니다. 새 기술이 나타났다고 익숙한 도구를 곧바로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산리식 토기 · 좀돌날

고산리식 토기는 흙에 식물성 섬유질을 섞어 만든, 우리나라에서 매우 이른 시기의 토기입니다. 좀돌날은 돌에서 떼어 낸 작고 길쭉한 날을 말합니다. 두 유물은 오래된 돌 다루기와 새로운 흙 다루기가 함께 이어졌음을 보여줍니다.

 

표면의 자국은 모두 장식일까요?

고산리식 토기의 중요한 특징은 흙 속에 섞인 식물성 섬유질의 흔적입니다. 토기를 굽는 과정에서 식물성 물질이 타고 자국이 남았습니다. 이 흔적을 모두 의도적으로 새긴 ‘식물무늬’로 설명하면 제작 과정과 장식을 혼동하게 됩니다.

그릇 조각을 볼 때는 표면에 무엇이 남았는지부터 살펴보세요. 작은 틈과 자국, 두께와 가장자리의 모양이 재료를 다루던 방식을 알려줍니다. 흙을 빚고 불에 굽는 선택 자체가 자연의 재료를 생활에 맞게 바꾸는 시도였습니다.

오늘날의 공예와 연결해 감상할 수는 있지만, 이 그릇이 특별한 제사나 축제에 쓰였다고 단정할 근거는 별도로 필요합니다. 또한 모든 고산리식 토기가 다른 토기보다 더 튼튼했다는 식의 단순한 비교도 조심해야 합니다.

2000년 이전에 촬영한 제주 고산리 유적 전경과 안내판
제주 고산리 유적 전경. 2000년 이전 촬영.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작은 돌에도 용도에 맞춘 모양이 있다

고산리에서는 화살촉과 긁개, 자르개 등 다양한 석기가 나왔습니다. 화살촉은 끝을 뾰족하게 다듬었고, 긁개는 재료를 긁을 수 있는 날을 만들었습니다. 무엇을 하려는지에 따라 돌을 다듬는 방향과 형태가 달라진 것입니다.

우리역사넷은 갈돌과 갈판을 통해 식물성 먹거리의 채집과 가공도 중요했음을 설명합니다. 바닷가 유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생계를 전부 고기잡이에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남은 도구를 하나씩 비교하면서 어떤 일을 했을지 따져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석기의 대칭이나 날의 각도를 관찰하면 실용성과 형태의 관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다만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과 당시 제작자가 장식을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감상은 열어 두되, 확인된 용도와 해석을 구분하면 좋습니다.

 

발견의 계기부터 다시 읽는 고산리

유적 안내센터 자료에 따르면 1987년 5월 주민이 흙을 채취하다 석창과 긁개를 발견해 알린 것이 중요한 출발점이었습니다. 이후 조사와 발굴이 이어졌습니다. 국가유산포털에 기록된 사적 지정일은 1998년 12월 23일입니다.

고산리를 ‘우리나라 모든 문화가 여기에서 출발한 곳’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지역에도 각자의 생활과 기술이 있었고, 새로운 자료에 따라 연대와 해석도 다듬어집니다. 고산리의 가치는 단 하나의 출발점을 선언하는 데보다, 이른 토기와 석기가 함께 남은 구체적인 모습에 있습니다.

 

다음에는 몸을 꾸미는 기술을 만납니다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고 돌을 다듬어 도구를 만들던 사람들은 몸을 꾸미는 물건도 남겼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동해안 고성 문암리의 옥 귀걸이를 살펴봅니다. 제주에서 강원으로 곧장 전파됐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지역의 유물을 통해 선사시대 표현의 폭을 넓혀 가는 순서입니다.

제주 고산리 유적 공식 안내 보기 ↗

 

궁금한 점

표면 자국이 모두 빗살무늬인가요?

아닙니다. 고산리식 토기의 섬유질 흔적과 도구로 새긴 빗살무늬는 구분해야 합니다. 대표이미지는 유적 출토 유물 여러 점을 모은 자료 사진이며, 모든 토기 조각을 같은 형식이나 연대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바다 가까이 있으니 조개더미도 있나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고산리가 해안가이면서 패총(먹고 버린 조개껍데기 등이 쌓인 유적)을 갖고 있지 않은 점을 설명합니다. 다른 해안 유적의 모습을 고산리에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됩니다.

방문하면 발굴 현장을 볼 수 있나요?

항상 공개되는 발굴 현장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안내센터의 관람·교육 정보와 운영 공지를 확인해 방문하세요.

자료 확인·개정: 2026년 10월 23일. 국가유산포털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 제주 고산리 유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유적 공식 발견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