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바위에 사슴과 고래, 배를 탄 사람들의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울산의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입니다. 종이도 카메라도 없던 사람들이 동물의 몸과 움직임을 살피고, 단단한 바위에 흔적을 새겼습니다.
이 그림 앞에서는 두 가지 질문을 함께 품게 됩니다. 무엇을 보고 그렸을까요? 또 무엇을 바라며 새겼을까요? 동물의 생김새처럼 확인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림에 담긴 마음은 오늘날의 연구와 해석을 통해 조심스럽게 짐작해야 합니다.
한국의 예술 | 선사시대부터 읽기
① 제주 고산리: 이른 토기와 석기
② 고성 문암리: 몸을 꾸민 옥 귀걸이
③ 울주 반구대: 바위에 새긴 동물
지역과 표현을 따라 읽는 순서입니다. 신석기 유적의 사용 시기는 서로 겹치며, 세 지역이 차례로 문화를 전해 주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물가의 절벽에 남은 선사미술
암각화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태화강으로 이어지는 하천의 절벽에 있습니다. 울산시 공식 안내에 따르면 중심 바위면은 너비 약 8m, 높이 약 4.5m이며, 주변 10곳의 바위면에도 그림이 남아 있습니다. 바다동물과 육지동물, 사람과 도구가 한 공간에 어우러집니다.
1971년 12월 25일 동국대학교 조사단이 주민의 제보를 바탕으로 확인했고, 1995년 6월 23일 국보로 지정됐습니다. 2025년에는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와 함께 ‘반구천의 암각화’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습니다.
암각화 · 반구천의 암각화
암각화는 바위 표면을 쪼거나 갈고 그어 새긴 그림입니다. 세계유산 ‘반구천의 암각화’에는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가 포함됩니다. 서로 다른 시기의 그림과 글씨를 함께 품은 유산입니다.

사슴은 정말 춤을 추고 있을까요?
사슴의 뿔과 다리, 몸의 윤곽을 따라가다 보면 금세 움직일 것 같은 생동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를 ‘춤추는 사슴’으로 부르거나 특정 축제 장면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감상과 해석의 영역입니다. 확인한 공식 자료만으로 사슴이 춤을 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유산포털은 새끼를 거느리거나 새끼를 밴 것으로 해석되는 사슴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그렇다고 바위에 새겨진 동물 대부분이 임신한 모습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동물마다 자세와 표현이 다르므로, 하나의 의미로 모두 묶기보다 각각의 모습을 보는 편이 좋습니다.
사슴을 볼 때는 뿔이 어떻게 갈라지는지, 몸통과 다리의 길이는 어떤지 살펴보세요. ‘풍요의 상징’이라는 답을 먼저 정해 놓기보다, 작은 특징을 골라 새긴 사람의 관찰력에 주목하면 그림이 한층 가까워집니다.
고래의 몸에는 바다를 관찰한 시간이 담겨 있다
반구대 암각화의 중요한 특징은 고래와 고래잡이 표현입니다. 울산시 안내는 머리와 입, 지느러미와 꼬리 등의 특징으로 여러 종류의 고래를 구분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고래를 단순히 커다란 물고기처럼 그린 것이 아니라, 몸의 차이를 세심하게 살핀 셈입니다.
배와 작살, 부구(물에 뜨게 만든 장치) 등도 함께 표현돼 있습니다. 동물 한 마리의 모양을 넘어, 사람들이 바다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생각해 볼 단서입니다. 유네스코도 세계의 바위그림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고래와 고래잡이 주제의 창의적 표현에 주목했습니다.
감상할 때는 동물과 도구의 관계를 찾아보세요. 고래 가까이에 무엇이 있는지, 배를 탄 사람들은 어떤 모양인지 살피면 흩어진 선들이 하나의 장면으로 다가옵니다. 다만 모든 그림을 같은 날 벌어진 사건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화강암이 아니라, 쪼고 갈아 흔적을 남긴 바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곳 바위가 셰일과 혼펠스로 구성된다고 설명합니다. 바위의 재질을 아는 일은 새긴 흔적과 보존 환경을 이해하는 출발점입니다. 제작기법으로는 도구로 표면을 두드리는 쪼기, 문질러 다듬는 갈기, 선을 새기는 긋기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몸통 안쪽까지 쪼아 채운 모습과 윤곽선을 중심으로 남긴 모습은 서로 다른 인상을 줍니다. 같은 동물이라도 면과 선 중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무게감과 움직임이 달라집니다. 그림을 알아보는 재미에 더해, 흔적을 만든 방식도 감상의 대상이 됩니다.
셰일 · 혼펠스
셰일은 고운 진흙 등이 굳어 만들어진 퇴적암입니다. 혼펠스는 암석이 열을 받아 성질이 바뀐 변성암입니다. 바위의 재질은 그림이 새겨지고 오랜 시간 남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입니다.
빛도 그림을 보는 데 영향을 줍니다. 울산시 공식 안내는 3~11월 오후 3~5시 사이 햇빛이 들면 형상이 더 또렷해진다고 설명합니다. 이를 선사인들이 착시 효과를 의도해 설계했다는 증거로 볼 수는 없습니다. 한 그림을 만드는 데 걸린 정확한 기간 역시 확인된 근거 없이 말하기 어렵습니다.
세계유산 등재 이후에도 남는 보존의 과제
이제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유산이 아닙니다. 2025년 등재가 완료됐습니다. 다만 세계유산이라는 이름이 앞으로의 보존을 저절로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유네스코의 2025년 결정문은 댐으로 인한 과거의 환경 압력이 상당 부분 완화됐다고 평가하면서도, 사연댐 관련 공사와 암면의 건조 가능성 등 환경 변화에 대한 관리·관찰을 다룹니다. 따라서 현재 상태를 근거 없이 ‘급격히 악화 중’이라고 단정하거나, 반대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하는 일 모두 피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유산에서 만나는 것은 오래된 동물 그림만이 아닙니다. 눈앞의 생명을 자세히 보고 몇 개의 선과 면으로 남긴 사람들의 표현입니다. 사슴의 뿔 하나, 고래의 꼬리 하나를 천천히 읽는 일이 수천 년 전의 시선과 만나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그릇과 장신구에서 바위그림으로
고산리에서는 흙과 돌을 생활에 맞게 바꾸는 손길을, 문암리에서는 몸에 걸 장신구를 살펴봤습니다. 반구대에서는 관찰한 동물과 삶의 장면을 바위에 남기는 표현을 만납니다. 세 사례는 선사시대 만들기의 서로 다른 모습입니다. 하나의 기술이 다음 지역에서 더 우수해졌다는 식의 발전 단계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
이후 청동기시대의 마을과 무덤, 금속 유물로 시선을 넓히면 생활의 변화 속에서 재료와 형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연재는 개별 유물의 정확한 연대와 출토 맥락을 우선해 한국 예술의 흐름을 이어 갑니다.
궁금한 점
그림이 모두 정확히 7천 년 전에 새겨졌나요?
모든 그림을 한 시점의 작업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유산포털은 신석기시대 유산으로 분류하며, 구체적인 제작 시기와 단계에는 연구상 견해 차이가 있습니다. ‘7천 년 전’은 모든 형상의 확정 연대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림의 수는 왜 자료마다 다른가요?
조사 시기와 형상을 구분하는 기준에 따라 수치가 다릅니다. 울산시 세계유산 안내는 중심 및 주변 암면을 포함해 312점 정도로 설명합니다. 숫자를 비교할 때는 조사 범위를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사냥이 잘되길 바라며 새긴 그림인가요?
풍요나 사냥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과 연결하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그림만으로 당시 의식의 구체적인 절차나 참여자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확인된 형상과 의미에 대한 해석을 구분해 읽으면 좋습니다.
자료 확인·내용 보완: 2026년 10월 23일. 국가유산포털 · 울산시 반구천의 암각화 ·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2025년 등재 결정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