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건물을 만나면 먼저 사진을 찍게 됩니다. 그런데 그 모양이 나오기까지 어떤 생각과 선택이 있었는지 물으면 감상의 범위가 달라집니다. 창문의 위치, 손이 닿는 벽의 재료, 바람이 지나는 틈까지 모두 누군가 고민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제주에서 열린 건축 포럼의 현장 기록은 그 과정을 들여다볼 만한 질문을 남겼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한 2026 제주국제건축문화제는 10월 24~29일 ‘공존의 미래, 열려있는 경계’를 주제로 진행됐습니다. 강연과 포럼, 영화 상영, 전시와 체험을 함께 묶은 행사입니다. 26일 비인공연장에서 열린 국제건축포럼에서는 벡터 아키텍츠의 동공이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총감독 이덕종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동공 · 벡터 아키텍츠 · 이덕종
동공(DONG Gong)은 2008년 벡터 아키텍츠(Vector Architects)를 설립한 건축가입니다. 행사 공식 소개에는 해변 도서관, 선장의 집 리노베이션, 양숴 슈가하우스 등이 대표작으로 실려 있습니다. 이덕종은 ARC studio의 건축가이자 이번 문화제 총감독으로, 포럼의 토론 주제와 현장 기록을 공개했습니다.
일곱 가지 질문으로 설계의 과정을 들여다봅니다
총감독이 공개한 자유토론의 주제는 일곱 가지입니다.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생각, 영향을 준 책, 설계 과정, 설계 도구인 모형, 다른 지역을 이해하는 방법, 고유성의 상실, 건축 재료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화두’는 작업을 이어가는 핵심 생각을, ‘고유성’은 다른 곳과 구별되는 그 장소만의 성격을 뜻합니다.
이 목록에서 눈에 들어오는 점은 하나의 건물을 여러 방향으로 묻는 방식입니다. 무엇을 만들었는지에서 출발해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장소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어떤 도구로 검토했는지까지 질문이 이어집니다. 한 장의 완성 사진을 오래 보게 만드는 질문들이기도 합니다.
총감독의 현장 기록에는 동공이 〈선장의 집〉, 〈아이 스톤 스프링〉, 〈슈가하우스 호텔〉, 〈난카이대학교 하이빙 센터〉, 〈징양 캠퍼 코트 호텔〉 등 다섯 프로젝트를 소개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기록은 설계에 담긴 실제 노동의 가치, 익숙한 환경에 새로움을 더하는 태도도 전합니다. 이 대목은 건축을 선택과 검토가 쌓이는 창작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모형은 작게 만든 건물에서 무엇을 보여줄까요
토론 주제 중 하나는 모형이었습니다. 모형은 건물과 주변을 일정한 비율로 줄여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도구입니다. 평면도에서 선으로 보이던 벽과 빈 공간을, 여러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설계 과정을 다룬 전시나 공개 자료를 볼 때 눈여겨볼 만한 대상입니다.
예를 들어 건물 사이에 마당이 있다면, 정면에서 본 모습과 옆에서 본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세요. 입구에서 안쪽까지 길이 이어지는지, 옆 건물과 어떤 간격을 두는지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순서로 모형을 살펴보면 사진에서 지나쳤던 공간의 관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작은 모형 하나가 완공 후의 모든 경험을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실제 빛의 밝기나 재료의 촉감, 계절에 따른 변화는 다른 자료와 현장에서 함께 살펴야 합니다. 대신 모형을 통해 공간의 관계를 먼저 파악하면, 완성 사진에서 놓쳤던 빈자리와 연결 통로가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건축사사무소 아루안의 2026 제주국제건축문화제 현장 기록. 슬라이드에서 행사 자료와 강연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원본 게시물 보기 ↗
바람과 햇빛도 설계의 출발점이 됩니다
25일 특강 연사는 삼부이치 히로시였습니다. 행사 공식 소개는 그가 ‘움직이는 소재’를 활용하는 건축을 추구한다고 설명합니다. 건축사사무소 아루안의 현장 기록 역시 바람과 물, 햇빛의 움직임에서 설계의 답을 찾는 접근에 주목합니다. 돌과 나무처럼 손에 잡히는 재료에 더해, 자연의 움직임을 생각하게 하는 관점입니다.
삼부이치 히로시
일본 히로시마에 사무소를 두고 세토 내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건축가입니다. 공식 연사 소개에는 이누지마 제련소 미술관, 나오시마 홀 등이 주요 작품으로 나옵니다. 이번 문화제에서는 ‘건축은 지구의 디테일’을 주제로 특강을 맡았습니다.
이 관점을 우리가 이용하는 공간에 옮겨보면 창문을 보는 방법도 달라집니다. 창밖 풍경과 함께 어느 방향에서 빛이 드는지, 창 가까이와 안쪽의 밝기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한낮과 늦은 오후에 생기는 그림자의 차이도 공간의 인상을 바꿉니다.
자연 조건이 어떤 설계 선택으로 이어졌는지 질문하면 살펴볼 지점이 구체적이 됩니다. 그늘을 만드는 처마, 바깥과 안을 잇는 공간, 빛을 안쪽으로 들이는 틈이 그 예입니다. 같은 공간을 다른 시간에 다시 보며 변화하는 빛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재료의 이름 다음에 물어볼 것들
‘건축 재료에 대한 태도’도 포럼의 질문이었습니다. 나무, 돌, 금속, 콘크리트라는 이름을 아는 것에서 한 번 더 나아가보세요. 같은 재료도 매끈하게 다듬었는지, 거친 결을 남겼는지, 서로 만나는 부분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따라 표정이 달라집니다.
사진에서는 벽 전체를 본 다음 모서리와 바닥의 만남으로 시선을 옮겨볼 수 있습니다. 실제 공간이라면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자리에서 재료를 가까이 보고, 조금 떨어져서 전체와의 관계를 살펴보세요. 만지는 행위는 허용된 곳에서만 하면 됩니다. 촉감과 온도, 시간이 지나며 생긴 흔적은 사진만으로 알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장소의 고유성을 묻는 질문도 여기에 이어집니다. 어떤 재료가 ‘지역적’이라고 불리는지 이름만 외우기보다, 기존 건물이나 주변 풍경과 어떤 관계를 만드는지 보는 것입니다. 오래된 부분이 남아 있다면 새로 더한 부분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보세요. 창작자의 설명과 눈앞의 공간을 번갈아 읽으면 감상이 더 구체적이 됩니다.
건축을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가 넓어질 때
이번 문화제의 프로그램에는 건축영화 〈지오 폰티 예찬〉 상영과 어린이 체험인 튼튼다리 챌린지, 타워쌓기 등도 포함됐습니다. 전시에는 준공 건축물 수상작과 공공건축가 기획전시, 사진공모전과 어린이 사생대회 수상작 등이 소개됐습니다. 건물을 영화로 보고, 손으로 쌓고, 사진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여러 입구를 마련한 셈입니다.
행사 일정은 29일까지였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공식 자료와 참여자의 기록을 볼 때는 마음에 드는 사진 하나를 고르고 질문 하나를 덧붙여보면 좋겠습니다. 이 창은 왜 여기에 있을까, 이 빈 공간은 누구를 위한 자리일까, 오래된 부분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그 질문이 우리가 매일 지나는 건축을 더 오래 바라보게 합니다.
궁금한 점
건축을 전공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나요?
빛이 드는 자리, 입구에서 이어지는 길, 손이 닿는 재료처럼 직접 볼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습니다. 전문적인 평가보다 자신의 관찰과 이유를 연결해보는 감상법입니다.
일곱 질문의 답변을 모두 볼 수 있나요?
총감독이 공개한 기록에서는 질문의 주제와 강연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체 강연록과 동일한 자료는 아니므로, 원문에서 확인되는 내용과 개인의 해석을 구분해 읽으면 좋겠습니다.
행사는 지금도 진행 중인가요?
2026년 행사는 10월 24~29일 일정으로 열렸습니다. 현장 방문 일정 대신 공식 행사 자료와 공개 기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자료: 제주국제건축문화제 행사 개요·공식 연사 소개, ARC studio의 현장 기록·토론 주제, 행사 공식 계정과 건축사사무소 아루안의 공개 기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