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문암리 옥 귀걸이, 신석기 사람들은 어떻게 몸을 꾸몄을까

돌로 그릇과 도구만 만든 것은 아닙니다. 가운데 구멍이 있고 한쪽이 살짝 터진 작은 고리도 만들었습니다. 강원특별자치도 고성 문암리 유적의 옥 귀걸이는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몸을 꾸미던 방식을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물건에서 재료와 몸의 관계를 읽어 봅니다.

한국의 예술 | 선사시대부터 읽기

① 제주 고산리: 이른 토기와 석기
② 고성 문암리: 몸을 꾸민 옥 귀걸이
③ 울주 반구대: 바위에 새긴 동물

지역과 표현을 따라 읽는 순서입니다. 신석기 유적의 사용 시기는 서로 겹치며, 세 지역이 차례로 문화를 전해 주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황해 해저가 아니라, 동해안의 무덤에서

이 글에서 살펴보는 귀걸이는 고성 문암리 유적의 매장유구(사람을 묻은 흔적)에서 발굴된 것입니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의 발굴보고서와 국립춘천박물관의 전시 설명으로 출토 맥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존 글의 ‘2007년 황해 수심 15m에서 발견’이라는 설명을 이 유물의 발견 이야기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문암리는 1997년 지표조사로 확인됐고, 이후 여러 차례 발굴이 이뤄졌습니다. 2002년 조사에서는 무덤과 함께 옥 귀걸이가 확인됐습니다. 옥이 반짝인다는 사실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에서, 어떤 물건과 함께 나왔는지입니다.

국립춘천박물관은 문암리 움무덤에서 한 쌍의 귀걸이와 간돌도끼 두 점이 나왔다고 설명합니다. 인골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묻힌 사람의 성별이나 신분, 실제 착용 자세를 확정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결상이식 · 움무덤

결상이식은 한쪽이 터진 고리 모양의 귀걸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둥글게 가공한 돌의 가운데에 구멍을 만들고 한쪽에 틈을 냈습니다. 움무덤은 땅에 구덩이를 파서 사람을 묻은 무덤입니다.

 

작은 틈이 모양과 쓰임을 함께 만든다

이 귀걸이는 멀리서 보면 둥근 고리지만, 자세히 보면 고리의 일부가 열려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문화정보 해설 자료는 귓불에 뚫은 구멍에 걸 수 있는 형태이며, 걸리는 부분에 홈을 내었다고 설명합니다. 닫힌 원을 그대로 만드는 대신, 몸에 걸 수 있도록 빈틈을 만든 것입니다.

감상할 때는 원의 크기만 보지 말고 두께와 가장자리, 열린 부분의 폭을 함께 살펴보세요. 비슷해 보이는 두 고리라도 모양이 완전히 같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장신구는 눈으로 보는 형태와 몸에 닿는 구조를 함께 생각하게 합니다.

‘옥’이라는 명칭만으로 오늘날 보석상에서 보는 특정 종류의 비취라고 단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원산지와 재료를 좁혀 말하려면 해당 유물의 분석 결과가 필요합니다. 이 글에서 확인한 자료만으로 대만 펑톈산 비취나 3,000km의 해상무역로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고성 문암리 선사유적 일대의 밭과 낮은 구릉 경관
고성 문암리 유적 일대의 자료 사진. 현재의 정비 상태를 보장하는 사진은 아닙니다.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꾸미기의 흔적이지만, 왕족의 표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누군가 몸에 걸 물건을 골랐다는 사실은 당시 사람들에게도 도구의 기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선택이 있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무덤에 함께 놓인 귀걸이는 살아 있을 때의 치장과 죽은 이를 대하는 방식 모두를 묻게 합니다.

그러나 진한 색의 옥은 왕족이나 제사장만 착용했다는 식의 설명은 확인된 근거가 필요합니다. 문암리 귀걸이에서 독수리나 물고기 문양이 확인됐다거나, 약재로 광택을 냈다는 설명 역시 이 글의 근거 자료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대신 작은 고리의 형태 자체에 집중해 볼 수 있습니다. 돌을 골라 구멍과 틈을 만들고 표면을 다듬는 일에는 여러 단계의 손질이 필요합니다. 정확한 제작기간을 몇 달이나 일 년으로 정하지 않아도, 완성된 모양에서 제작자의 판단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장신구만이 아니라, 생활이 함께 남은 문암리

문암리는 귀걸이 한 쌍만 따로 나온 장소가 아닙니다. 집터와 토기, 낚시 도구 등 여러 생활 흔적이 함께 조사된 유적입니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의 보고서는 결합식 낚시 도구와 작살, 무덤에서 나온 귀걸이와 토기를 소개합니다.

이처럼 여러 종류의 자료를 함께 보면 장신구가 생활과 동떨어진 물건이 아니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먹거리를 구하고 집을 마련하던 사람들이 자신이나 타인의 몸을 꾸미는 물건도 만들었습니다. 생활 도구에서 몸의 장식으로 시선을 옮기는 것이 이번 편의 감상 포인트입니다.

문암리와 다른 동아시아 지역에서 비슷한 형태의 장신구가 발견되는 점은 교류와 확산을 연구하는 단서입니다. 다만 모양이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인물의 여행 경로나 단일 무역망이 바로 밝혀지는 것은 아닙니다.

국립춘천박물관 출토품 설명 보기 ↗

 

궁금한 점

약 7천 년 전이라는 연대는 확정인가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문암리 결상이식을 기원전 5,000년경으로 소개합니다. 이는 고고학적 추정 연대이며 제작한 해를 직접 적어 둔 기록은 아닙니다.

대표이미지에 귀걸이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표이미지는 출토 장소인 고성 문암리 유적의 실제 경관 사진입니다. 귀걸이의 모습과 전시 설명은 위의 박물관 공식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산리 다음에 문암리가 이어진다는 뜻인가요?

연재는 생활 도구, 몸의 장식, 바위그림 순서로 감상을 넓힙니다. 지역별 유적의 시기는 겹칠 수 있으며, 세 유적의 선후관계나 직접적인 전파 경로를 확정한 순서가 아닙니다.

자료 확인·개정: 2026년 10월 23일. 고성 문암리 유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발굴보고서 안내 · 국립춘천박물관 상설전시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