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작품 앞에서도 설명문을 읽다가 발길을 돌릴 때가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 작은 글씨, 길고 추상적인 문장이 작품과 관람객 사이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영상 작품의 대사를 따라가느라 화면을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술관이 무엇을 보여주는지만큼,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만나는지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게티 재단은 10월 28일 이런 문제를 다루는 ‘뉴 인터프리테이션스(New Interpretations)’ 사업을 발표했습니다. 첫 지원 규모는 11개 프로젝트, 총 270만 달러입니다. 다국어 안내부터 휴대전화 자막, 지역 공동체가 참여하는 설명문까지 다룹니다. 한국의 리움미술관과 홍콩 M+가 함께하는 프로젝트도 포함됐습니다. 설명문 몇 줄을 고치는 일을 넘어, 관람객의 경험을 전시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시도입니다.
게티 재단과 전시 해석
게티 재단은 미술의 연구·보존·이해를 돕는 사업을 지원하는 기관입니다. 여기서 ‘전시 해석’은 작품의 의미를 하나로 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설명문, 오디오, 자막, 대화 등 관람객이 작품을 이해하도록 돕는 여러 방법을 뜻합니다.
설명문을 번역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워커 아트 센터는 지역 주민이 사용하는 언어를 전시장에 더 적극적으로 연결하려 합니다. 이미 영어·몽어·소말리어·스페인어로 안내를 넓혀왔습니다. 이번에는 다코타어, 오지브웨어, 미국 수어 등을 포함한 일곱 언어의 사용자와 협력해, 소장품 전시장과 미니애폴리스 조각공원을 위한 새로운 안내 방식을 시험할 계획입니다.
주목할 점은 완성한 영어 문장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역 구성원이 설명을 만드는 과정에도 참여합니다. 작품에 관해 무엇을 먼저 말할지, 어떤 표현이 자연스러운지부터 함께 살펴보는 방식입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관람객이 살아온 곳과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궁금한 지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외국인 친구와 전시를 볼 때 영어 설명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 아이와 함께 읽을 만한 문장을 찾는 일을 떠올리면 됩니다. 안내의 언어가 늘어나는 것과 그 안내가 실제로 읽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워커의 실험은 그 두 가지를 함께 점검하려는 사례입니다.
영상 옆의 자막, 내 휴대전화로 볼 수 있다면
호주 멜버른의 ACMI는 영화·텔레비전·비디오게임 등 스크린 문화를 다루는 기관입니다. 이곳은 관람객의 개인 기기에 번역 자막을 작품과 맞춰 제공하는 앱을 개발하고 시험해왔습니다. 이번 지원으로 앱을 더 다듬고, 관람객 조사와 전시장 테스트를 거쳐 다른 기관과 공유할 방법을 살펴봅니다.
벽 한쪽에 자막을 따로 띄우면 작품과 번역문 사이에서 계속 시선을 옮겨야 할 수 있습니다. 개인 기기에서 동기화된 자막(영상의 진행 시점에 맞춰 나오는 글)을 제공하는 방식은 여러 언어의 관람객이 같은 작품을 보는 상황에서 다른 선택지가 됩니다. 다만 휴대전화 화면을 보느라 정작 작품을 놓치지는 않는지, 기기를 쓰기 불편한 사람에게는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도 함께 따져야 합니다.
공식 계획에 관람객 연구와 실제 전시장 테스트가 들어간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설치했다는 사실보다 사람들이 작품을 편하게 따라갈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앱이 지원 대상 모든 미술관에 보급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현재 발표는 개발·평가·공유를 이어가기 위한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입니다.
워커 아트 센터 · ACMI
워커 아트 센터는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현대미술 기관입니다. ACMI는 호주 멜버른에 있는 스크린 문화 기관입니다. 이번 사업에서는 각각 지역의 여러 언어와 개인 기기 자막을 통해 관람객의 경험을 살펴봅니다.
리움과 M+, 아시아 미술관의 경험을 모읍니다
한국 독자에게 가까운 소식은 서울 리움미술관과 홍콩 M+의 협력입니다. 두 기관의 프로젝트는 관람객을 중심에 두는 미술관 실무자들의 교류를 넓히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게티가 공개한 지원액은 4억 원입니다.
먼저 2026년 12월 M+에서 아시아 미술관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심포지엄을 열 예정입니다. 사례 발표와 토론, 워크숍을 통해 다양한 관람객을 고려한 설명문 쓰기, 전시 안내 계획, 오디오 가이드 등을 다룹니다. 이어 2027년 3월에는 리움에서 한국과 아시아의 실무자를 대상으로 닷새간의 ‘인터프리테이션 아카데미’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영어·한국어·중국어 실무 안내서도 함께 마련합니다. 한 기관의 성공 사례를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른 현장에서 참고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남긴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현재 발표된 내용은 전문 인력의 교류·교육 사업입니다. 일반 관람객이 바로 예매할 수 있는 전시나 체험 행사로 받아들이지는 않아야 합니다.
리움미술관 · M+
리움미술관은 서울에 있는 미술관입니다. M+는 홍콩에서 현대·동시대의 시각문화를 다루는 박물관입니다. 두 기관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관람객을 돕는 설명과 안내 방법을 아시아의 실무자들과 함께 연구하고 공유합니다.
설명이 좋아졌는지는 누가 판단할까요
미국 덴버 미술관은 관람객의 목소리를 모으는 조사에 나섭니다. 현장 설문과 관람객 패널(경험과 의견을 지속해서 나누는 참여 집단)을 통해 사람들이 미술관에서 어떤 연결을 원하는지 살펴볼 계획입니다. 미술관 실무자들이 전시장 활동과 사례를 나누는 실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조사 결과와 평가 내용을 보고서로 정리합니다.
이런 조사는 설명문이 짧아졌는지, 디지털 장치가 늘었는지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작품 앞에서 대화가 생겼는지, 자신의 경험과 연결할 실마리를 얻었는지,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게티 역시 이번 사업에서 실험과 평가, 기관 사이의 경험 공유를 강조했습니다.
아래 공식 게시물에는 참여 기관의 기존 전시와 관람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새 지원 사업의 완료 장면은 아닙니다. 사진을 넘기며 관람객과 작품 사이에 어떤 공간과 안내가 놓여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번 소식을 이해하는 한 방법입니다.
출처: 게티 공식 인스타그램. 참여 기관의 기존 전시·관람 사진이며, 첫 사진은 Mitro Hood 촬영입니다. 원본 게시물 보기 ↗
다음 전시에서는 설명의 방식도 살펴보세요
이 소식이 흥미로운 이유는 특별한 작품을 새로 들여오는 일과 다른 방향에서 미술관의 변화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같은 작품을 두고도 누구의 언어로 말하는지, 소리를 들을 수 없을 때 어떤 길을 열어두는지에 따라 감상 경험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설명은 작품 옆에 붙는 부속물이 아니라, 작품에 다가가는 입구가 됩니다.
다음에 전시를 본다면 설명문에서 한 문장을 골라 작품과 비교해보세요. 그 문장이 실제로 무엇을 보게 하는지, 궁금한 점을 더 만들어주는지 살펴보면 됩니다. 오디오와 자막을 선택할 수 있는지, 어린이나 다른 언어를 쓰는 동행도 함께 이용하기 편한지 확인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정답을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보다, 작품을 다시 바라볼 계기를 얻었는지가 유용한 감상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
11개 미술관에 같은 서비스를 설치하나요?
아닙니다. 지원 단위는 11개 프로젝트이며 기관마다 목적과 방식이 다릅니다. 다국어 안내, 자막 앱, 관람객 연구, 실무자 교육처럼 각자의 현장에 맞는 실험을 진행합니다.
리움과 M+의 프로그램은 언제 열리나요?
공식 계획은 2026년 12월 M+ 심포지엄, 2027년 3월 리움의 닷새간 아카데미입니다. 실무자 교류와 교육이 중심이며, 일반 관람객 대상 전시 일정이나 예매 안내와는 구분됩니다.
설명이 많으면 작품을 자유롭게 보기 어려워지지 않을까요?
모든 안내를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작품을 먼저 보고 궁금한 부분만 설명에서 찾는 방식도 가능합니다. 이번 사업의 여러 시도는 관람객에게 맞는 접근 방법을 넓히고, 실제 경험을 조사해 개선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게티 공식 발표 보기 → 11개 프로젝트 자세히 보기 →
자료: 게티 재단 2026년 10월 28일 발표 및 ‘New Interpretations: Grants Awarded’. 세부 일정과 진행 내용은 해당 기관의 후속 안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