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어떤 집에서 살고, 어떤 도구로 곡식을 거두었을까요? 충남 부여의 송국리 유적에는 집터와 무덤, 토기와 돌 도구가 함께 남아 있습니다. 눈에 띄는 청동검 한 점뿐 아니라 마을 전체를 살펴보면, 당시 사람들이 재료와 공간을 다룬 방식이 보입니다.
한국의 예술 | 선사시대부터 읽기
① 제주 고산리: 이른 토기와 석기
② 고성 문암리: 옥 귀걸이
③ 울주 반구대: 바위그림
④ 부여 송국리: 청동기 마을과 도구
⑤ 강화 오상리: 돌로 만든 무덤
시대와 지역, 표현 방식을 따라 읽는 순서입니다. 유적들의 사용 시기는 일부 겹치며, 이 순서대로 문화가 전파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비파형동검’입니다
송국리 유적이 알려지는 중요한 계기는 1974년 발견된 돌널무덤(판돌로 관처럼 만든 무덤)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나온 대표 청동검의 이름은 비파형동검입니다. 부여군 공식 안내도 이 발견을 소개하며, 1975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됐다고 설명합니다.
기존 글의 ‘방패형 동검’이라는 명칭과 방패 모양 손잡이·정교한 문양 이야기는 송국리 출토품을 설명하는 근거가 확인되지 않아 바로잡았습니다. 다른 지역의 방패 모양 청동기와도 구분해야 합니다.
비파형동검 · 송국리문화
비파형동검은 날의 윤곽이 현악기 비파처럼 가운데가 넓어지는 청동검입니다. ‘송국리문화’는 이 유적을 기준으로 비슷한 집터와 토기, 생활 도구를 묶어 살펴보는 고고학 용어입니다. 한 마을의 이름이 더 넓은 지역의 생활문화를 이해하는 기준이 된 것입니다.
둥근 집 바닥에 남은 작은 단서
송국리에서는 둥근 집터와 네모난 집터가 모두 발견됐습니다. 송국리형 주거지로 불리는 둥근 집터는 바닥 가운데의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이 중요한 특징입니다. 지금 지붕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발굴된 바닥과 구멍의 위치를 바탕으로 집의 구조를 연구합니다.
현장의 복원 주거지는 이런 연구를 눈으로 이해하도록 만든 시설입니다. 초가지붕의 형태나 내부 모습을 청동기시대 건물 원형이 그대로 남은 것으로 보면 안 됩니다. 집터 사진에서는 먼저 바닥 윤곽과 기둥이 섰을 자리를 찾아보면 좋습니다.

청동기시대에도 돌 도구를 썼습니다
‘청동기’라는 이름 때문에 모든 도구가 금속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송국리의 생활을 보여주는 유물에는 돌칼과 돌도끼 같은 석기가 많습니다. 청동과 돌, 흙은 각자 쓸모에 따라 함께 사용됐습니다.
곡식을 거두는 돌칼은 날의 모양과 구멍을 살펴볼 만합니다. 손에 쥐고 쓰기 좋게 형태를 다듬는 일에는 재료의 성질을 아는 경험이 필요했습니다. 실용적인 도구에서도 기능과 모양이 만나는 지점을 볼 수 있습니다.
토기 역시 생활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송국리형 토기는 입구가 바깥으로 벌어지고 몸통이 길쭉하며 밑부분이 좁아지는 형태가 특징입니다. 복잡한 장식만을 찾기보다 그릇의 윤곽과 입구, 표면을 비교해 보세요. 무엇을 담고 어떻게 사용했을지 생각하는 데서 감상이 시작됩니다.
무덤 속 물건으로 어디까지 알 수 있을까요?
비파형동검이 나온 1호 돌널무덤에서는 청동 끌과 간돌검(갈아서 만든 돌검), 돌화살촉, 옥 장신구도 함께 확인됐습니다. 함께 묻은 물건의 조합은 당시의 기술과 장례 관습을 연구하는 자료가 됩니다.
다만 귀한 물건이 있다고 곧바로 특정한 왕이나 제사장의 무덤으로 이름 붙일 수는 없습니다. 주인의 정확한 신분, 검을 사용한 구체적인 의식, 각 물건에 담긴 생각은 남은 자료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확인된 물건과 그 의미에 대한 해석을 나눠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생활을 만드는 기술도 한국 예술사의 한 장면
송국리를 오늘날의 미술관처럼 볼 필요는 없습니다. 집의 바닥을 계획하고 흙으로 그릇을 빚고 돌에 날을 세우는 일은 살아가기 위한 기술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결과에 남은 비례와 형태, 재료를 다룬 솜씨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강화 오상리 고인돌군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집을 짓고 도구를 만들던 손이, 죽은 이를 위한 공간에서는 돌을 어떻게 쌓았는지 이어서 살펴봅니다.
궁금한 점
사진 속 집은 당시 건물이 그대로 남은 건가요?
아닙니다. 발굴 자료를 이해하도록 복원한 주거지입니다. 실제로 남아 조사된 집터와 복원 시설을 구분해 보세요.
비파형동검은 지금 현장에서 볼 수 있나요?
이 글은 현재 전시를 안내하는 글이 아닙니다. 출토품의 전시 여부와 장소는 박물관의 최신 공지를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송국리문화는 이 마을만을 뜻하나요?
아닙니다. 송국리 유적을 기준으로, 비슷한 집터와 유물의 특징을 공유하는 더 넓은 지역의 문화를 묶어 부르는 말입니다.
자료 확인·개정: 2026년 10월 23일. 부여군 · 부여 송국리 유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고고학사전. 사진: 한국관광공사, 지역N문화 제공 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