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오상리 고인돌군, 돌을 쌓아 만든 청동기시대의 기억

커다란 돌 한 장을 작은 돌들이 떠받치고 있습니다. 인천 강화군 내가면의 오상리 고인돌군에서는 이 익숙한 형태를 여러 방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멀리서는 단순한 돌무더기처럼 보여도, 가까이 보면 돌을 고르고 맞춰 쌓은 손길이 드러납니다. 죽은 이를 위한 공간을 만든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기술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한국의 예술 | 선사시대부터 읽기

① 제주 고산리: 이른 토기와 석기
② 고성 문암리: 옥 귀걸이
③ 울주 반구대: 바위그림
④ 부여 송국리: 청동기 마을과 도구
⑤ 강화 오상리: 돌로 만든 무덤

시대와 지역, 표현 방식을 따라 읽는 순서입니다. 유적들의 사용 시기는 일부 겹치며, 이 순서대로 문화가 전파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5천 년 전 작업실’보다 먼저 확인할 것

오상리 고인돌군은 청동기시대 유적입니다. 국가유산포털에 등록된 지정 수량은 12기이며, 1999년 4월 26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됐습니다. 고인돌 무리를 다루는 공식 명칭은 ‘강화 오상리 고인돌군’입니다.

이곳을 정확히 5천 년 전의 ‘예술가 작업실’이라고 부를 근거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무덤 주변에서 토기와 돌 도구가 발견됐다는 사실만으로 전문 제작 공방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 유적의 중심은 돌로 만든 무덤과 그 구조입니다.

고인돌 · 고인돌군

고인돌은 큰 덮개돌 아래에 받침돌이나 매장 시설을 둔 선사시대의 무덤 또는 기념물입니다. ‘군’은 여러 기가 모여 있다는 뜻입니다. 위의 큰 돌은 덮개돌, 그것을 받치는 돌은 받침돌이라고 부릅니다.

 

가장 큰 돌만 보지 말고, 그 아래를 보세요

오상리에서는 덮개돌의 아래쪽과 가장자리를 다듬은 흔적이 확인됩니다. 무덤방은 판돌을 관처럼 맞춘 돌널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덮개돌 아래에 공간을 마련하고, 돌들이 제자리를 지키도록 받치는 방식이 중요한 관찰 지점입니다.

국가유산포털은 벽석(무덤방의 벽을 이루는 돌)이 넘어지지 않도록 쐐기돌을 끼워 안정시켰다고 설명합니다. 큰 돌의 무게만큼 작은 돌의 역할도 중요했던 셈입니다. 사진에서는 수평으로 놓인 덮개돌과 그 아래 세워진 돌의 관계를 먼저 찾아보면 좋습니다.

바닥도 모두 같지는 않습니다. 공식 설명에 따르면 대부분은 맨바닥이며, 1·4·9호에서는 판돌이나 깬돌을 깐 시설이 확인됐습니다. 일부 무덤의 특징을 유적 전체에 적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화 오상리 고인돌군의 덮개돌과 받침돌이 보이는 모습
강화 오상리 고인돌군. 사진: 한국관광공사 · 사진 출처

 

돌을 쌓는 일에서 발견하는 조형 감각

덮개돌의 넓은 면, 세워진 받침돌의 방향, 돌 사이에 생기는 빈 공간을 보세요. 오늘날 조각을 볼 때처럼 무게와 균형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자연석을 골라 다듬고 놓는 과정은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당시 사람들이 현대의 야외 조각을 만들었다고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죽은 이를 묻고 기억하는 목적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예술’은 우리가 형태와 공간을 감상하는 하나의 관점이며, 무덤이라는 실제 성격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크기가 서로 다른 돌들이 모여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공식 자료는 개별 ‘내가고인돌’의 덮개돌 길이를 335cm, 그 밖의 덮개돌을 130~260cm로 설명합니다. 크기의 차이는 눈으로 비교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묻힌 사람의 신분과 관계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발굴과 복원으로 읽는 오늘의 풍경

강화군 안내에 따르면 오상리에서는 2000년 선문대학교의 발굴이 진행됐습니다. 토기와 돌 도구가 확인됐고 고인돌 정비·복원도 이뤄졌습니다. 지금의 잔디밭과 정돈된 풍경 전체를 청동기시대 모습 그대로라고 보면 안 됩니다.

발굴에서는 유물이 나왔다는 사실뿐 아니라 어디에서 어떤 상태로 발견됐는지가 중요합니다. 무덤 안의 물건인지, 주변에서 나온 생활 도구인지에 따라 설명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특정 토기가 있다는 이유로 이곳을 대규모 토기 제작소로 부르는 것은 한 단계 더 나아간 추정입니다.

오상리 고인돌군과 ‘내가고인돌’

강화군 자료에는 무리 전체인 ‘오상리 고인돌군’과 개별 고인돌인 ‘강화 오상리 고인돌(내가)’이 따로 소개됩니다. 옛 지정번호도 고인돌군은 기념물 제47호, 개별 고인돌은 제16호로 다릅니다. 이름이 비슷해도 같은 범위의 지정은 아닙니다.

 

마을의 도구에서 기억의 공간으로

앞선 송국리 편에서는 집터와 생활 도구를 살펴봤습니다. 오상리에서는 같은 청동기시대라도 무덤이라는 다른 공간을 만납니다. 두 지역을 직접 연결된 하나의 집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생활과 장례라는 서로 다른 장면을 비교하는 읽기입니다.

흙을 빚은 그릇과 갈아 만든 돌 도구, 큰 돌을 맞춘 무덤에는 모두 재료를 목적에 맞게 다루는 기술이 담겨 있습니다. 오상리 고인돌군은 화려한 장식 대신 돌의 면과 무게, 빈 공간으로 오래된 사람의 선택을 보여줍니다.

국가유산포털 오상리 고인돌군 보기 ↗

이어서 읽기 | 무덤 속에 그린 다른 세계

장천1호분 벽화, 나무 아래 놀이와 연꽃에 담긴 고구려의 바람
청동기 고인돌에서 시대를 건너뛰어 고구려의 벽화무덤을 살펴봅니다. 무덤을 만들고 꾸민 방식의 차이를 비교해 보세요.

 

궁금한 점

고인돌은 제단인가요, 무덤인가요?

고인돌은 무덤과 기념물 등 여러 성격으로 연구됩니다. 오상리에서는 무덤방의 구조와 출토 자료를 바탕으로 장례와 관련된 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12기는 모두 똑같이 생겼나요?

아닙니다. 덮개돌 크기와 바닥 시설 등에 차이가 있습니다. 한 기의 특징을 모든 고인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방문할 때 무엇을 지켜야 하나요?

덮개돌에 올라가거나 돌을 움직이지 말고, 현장의 안내와 관람 동선을 따라 살펴보세요. 시설 정비와 접근 상황은 방문 전 공식 안내를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자료 확인·개정: 2026년 10월 23일. 국가유산포털 · 강화군 오상리 고인돌군 · 강화군 개별 고인돌 안내. 사진: 한국관광공사, 지역N문화 제공 자료.